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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Sep 29. 2021

너무 붙지 마. 아프잖아!

어떤 관계든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이 안 되는 말 같지만 의외로 주변엔 그런 경우가 많다. 가깝게 지내는 것이 좋다가도 어느 순간 상처가 되고 그래서 멀어지면 외로워지는 관계가 그렇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관계에서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은 상처받거나 혹은 외로움에 힘들어한다.    

 

 민정과 정미는 둘도 없는 친구다. 민정은 친구를 사귀는 데 힘들어하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같은 직장 후배이자 서로 동갑인 정미가 먼저 다가와 줬을 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쉽게 사람과 친해지기 힘들지만, 민정은 막상 사귀고 나면 무조건 잘해주는 스타일이었다. 민정과 정민은 퇴근 후면 함께 식사도 하고 회사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도 하면서 서로 우정을 쌓아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둘의 친분은 두터워졌지만, 민정은 점점 불편함을 느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엄연히 직장에선 후배인 정민이 자기 일을 민정에게 떠맡기기 일쑤였고 연차도 자신에게 편한 날짜에 맞춰 달라고 생떼를 쓰기도 했다. 뭐라고 한마디 하자니, 정민이 상처받을 것 같아 말도 못 꺼내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공과 사도 구분 못 하는 정미가 밉다가도 힘들 때마다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정미를 마냥 미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회사에서 정미 말고는 친한 사람도 없는데 정미마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웠다.     

 가까이 다가가자니 상처받고 멀어지자니 외로워지는 관계를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한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저서 『소품과 단편집』에 나온 우화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 고슴도치들은 추위를 못 이겨 얼어 죽지 않으려고 서로에게 다가갔다. 온기를 나누면 좋겠다 싶었지만,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자 화들짝 놀라 뒷걸음쳤다. 아픈 것보다 추운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것도 잠시, 아픔이 사라지자 또다시 추위가 몰려왔다. 다시 서로에게 다가간 고슴도치는 역시나 이번에도 가시로 상처를 냈고 너무도 고통스러워 추위도 잊게 했다. 겨우내 서로 다가갔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추위와 상처의 고통을 반복해야 했다. 우화만 본다면 결국 고슴도치들은 가시에 찔려죽거나 얼어 죽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밖엔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고슴도치 딜레마는 똑같이 적용된다. 너무 가까워진 사이는 상처를 주고 반대로 멀어지면 외롭게 만든다. 다가가면 상처로 괴롭고 멀어지면 외로움으로 힘들게 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고슴도치 딜레마의 전제는 ‘가깝게 지내고 싶다.’이다. 친밀하게 지내고 싶지만 가까워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로 상처받기는 원하지 않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이성 친구로는 좋지만 사귀긴 싫어.’

‘친한 친구로 지내는 건 좋지만 사생활까지 침범하는 것은 원치 않아.’

‘충고하는 것까진 괜찮지만 상처받을 정도로 함부로 말하는 건 싫어.’

어떤가? 누구나 한 번쯤 갖는 생각 아닐까?      


 우리도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했을 때 상처받는다. 그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길 원한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처음부터 다가가면 아플 것이라는 전제를 깔아놓기 때문에 딜레마가 발생한다. 혼자 있기도 싫고 외로운 것도 싫은 말이 안 될 것 같은 말은 여기서 생겨났다.    

  

 사회학자 에드워드 홀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개개인의 공간 욕구가 존재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심리적 공간을 ‘퍼스널 스페이스’라고 했다. 퍼스널 스페이스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거리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에드워드 홀은 여기에 덧붙여 사람 사이의 친밀도와 공간적 거리를 4가지로 나눴다. 한쪽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45cm 이하의 거리가 가능한 친밀한 거리, 두 팔을 펼쳤을 때인 46~104cm 이하인 개인적 거리, 그리고 조금 더 멀리 떨어진 사회적 거리와 대중적 거리가 그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거리가 몇cm냐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별 혹은 문화나 개인적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연인이나 부부, 가족이라 하더라도 딱 붙어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인 관계는 없다는 말이다. 모두가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어느 관계에서건 적당한 거리에 있어야 각자의 생활도 존중받고 상대를 가시로 찌르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누구나 저만의 가시가 있다. 거절, 비난, 질투, 분노, 무시, 시기, 오만, 경멸, 이기심....... 어떤 가시가 나를 찌를지 모른다. 자신 역시 가까운 누군가를 가시로 찌를 수도 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다. 서로가 지켜야 할 예의를 갖춤으로써 온기는 느끼되 뾰족한 가시로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다.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처음부터 관계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고슴도치 우화로 관계의 딜레마를 말했던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 철학자였다. 그는 이발사가 면도칼로 자신의 목을 찌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발소를 가지 않았다고 한다. 불이 날까 봐 2층에선 자지 않았고 도둑이 들것이 걱정되어 금화는 잉크병 속에 지폐는 침대 밑에 숨겨두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사람의 관계에 대한 회의가 나올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론 자신이 찔릴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게 남을 상처입히기도 한다. 그렇다고 홀로 온기 없이 추운 겨울을 보내는 선택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누구에게나 가시는 존재하고 사람에 따라 가시를 잘 관리해 함부로 누군가를 찌르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만 다가가도 뾰족하게 드러내 사정없이 상처 주는 사람도 존재한다. 예의라는 갑옷을 입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가시를 세우고 다가와 상처입히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행여 예의를 갖추고 애써 유지하고 있는 거리로 가시를 드러내며 성큼성큼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해주어야 한다. “너무 붙지 마. 아프잖아.”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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