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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Sep 08. 2021

괜찮아질 거라는 거짓말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모두가 불행하진 않다.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서 최고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운명에 대한 체념이 있어야 한다.”          -이솝-     


 뉴스를 볼 때마다 속이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다. 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고, 누구는 아빠 찬스로 군대를 면제받고, 어떤 사람은 부모 잘 만나 돈 걱정 없이 살고 있다. 나만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현실은 억울하고 불공평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악한 사람은 착한 사람을 괴롭히며 성공하다가 결국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성공한다는 공식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 고졸인 사람이 일로 인정받아 고위직에 오르고 우연히 마주친 재벌 2세에게 귀싸대기 날린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환상 속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더는 개천에선 용이 나지 않는다.

    

 기댈 곳 하나 없는 나는 세상에 덩그러니 버려진 상처투성이 결핍자일 뿐이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가진 자에 대한 비난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현실에 대한 비관뿐이다. 행여 누군가의 동조가 필요하다면 밤늦은 시간 전화기를 붙들고 주저리주저리 한풀이를 쏟아내기도 한다.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다. 하지만 불공평한 세상에서도 나만큼은 예외가 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안 좋은 일은 제발 내 일이 아니길 바라고 조금이라도 나를 비켜 가주길 기도한다.     

 터널의 출구조차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을 지나던 시절에 나 역시 모든 건 불공평한 세상 탓이라고 억울해했던 적이 있었다. 주변에선 곧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곧 좋아질 거라고. 그러니 조금만 참고 견디면 되는 거라고.


거짓말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나의 억울함과 분노와 무기력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괜찮아질 거라는 뻔한 거짓말에 속지 않으려 오히려 뾰족해질 대로 뾰족해져 모난 돌처럼 굳어갔다.


 나는 그것이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맞지 않고 나에게 좋지 않았던 상황들은 불공평이고 내가 남들과 같아져야만 공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인정했던 것은 세상일이 나와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저 내가 불행하다는 현실에 대한 마지못한 인정이었다. 그것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 원인이며 그 생각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불행을 먹이 삼아 견뎌내고 있었을 뿐이다.  

   

 내 삶이 남들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믿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희망 고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과 같은 길을 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그 길이 내 길이 맞는지 따위는 고민하지 않는다.


 남들 다 사는 부동산을 제때 구매하지 못해 ’벼락 거지‘가 되기도 하고 뒤늦게 배에 올라 난파당하는 일도 수없이 당한다. 남들과 같아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부터 불행은 시작된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걸어야만 공평하다는 착각 속에 있는 나를 구제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의 길을 찾는 것뿐이다.      


 백상예술대상에서 수상한 배우 오정세는 왜 우리가 불공평한 세상에서 나의 길을 찾아야만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어떤 작품은 성공하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심하게 망하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좋은 상까지 받는 작품도 있었는데요. 작업한 100편 다 결과가 다르다는 건 신기한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100편 다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이 열심히 했거든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잘해서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고, 제가 못해서 망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에는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꿋꿋이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많은 사람이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는 것은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지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 간에 그 일을 계속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탓이 아닙니다. 그냥 계속하다 보면 평소와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도 보상이 여러분들에게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저한테는 동백이가 그랬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곧 반드시 여러분들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한동안 위로도 되지 못했던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은 나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을 때 비로소 귀에 들려 온다. 남의 것이 더 커 보이고 더 좋아 보이는 동안엔 상대적으로 내가 가진 것이 초라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자꾸만 지나쳐 온 시간에 대한 후회와 원망은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힘만 들 뿐이다.


 불공평한 세상에서 스스로 위로하는 방법은 지금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묵묵함과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래서 뭐 어쩌라구? 라며 따질 수 있는 뻔뻔함이 필요하다.     


 불공평한 세상에 산다고 모두가 불행해지는 건 아니다. 행여 그런 세상 속에서 받은 상처를 안고 산대도 우리에겐 남들에게 부러움을 살 만한 또 다른 일들이 준비되어 있다. 행복이 영원하지 않듯 깊숙이 찔려 상처마저 곪아 터진 상처도 언젠가는 아물기 마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야 한다. 세상과 싸우기도 벅찬 오늘을 자신을 괴롭히며 보낼 필요는 없다. 견디는 삶이 의미 있고 중요한 이유는 꾸준히 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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