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자유
사춘기와 갱년기의 조우 (3)
글쓰기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먼저 프로그램을 두 개나 신청하고 남자들에게 같은 공간에서도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부르고, 찾는 가족들에게 불편함을 주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이론대로라면 자유에는 단서가 붙는데 나의 자유는 뭔가 잘못되어 있었을까? 그걸 따지고 들 여유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사춘기 소년은 좀 더 자유를 얻었고 불편한 건 막내와 남편이었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밀은 <자유론>에서 이야기한다.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하고 또 유일하게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자유이다. 우리의 육체나 정신, 영혼의 건강을 보위하는 최고의 적임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각 개인 자신이다.
<자유론>( p.42)
밀의 말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자유는 무엇보다 가장 소중하다. 육체나 정신, 영혼의 건강을 보위하는 최고의 적임자는 누구도 아닌 개인 자신이다. 누가 나의 내면이나 육체를 들여다보고 바로 진단을 해 줄 수 있을까? 배가 아픈지, 머리가 아픈지, 악몽을 꾸는지, 자살 충동을 느끼는지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의사는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가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의사의 처방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남편도 아이들도 내가 겪는 극심한 혼돈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들이 모르는 건 당연하다. 나조차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말을 하지 못할 때 조바심이 났다. 아들 둘을 키울 때 열 권이 넘는 육아서를 섭렵하며 초보 엄마의 불안감을 해소했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읽은 첫 책이 <베이비 위스퍼>였다. 육아 환경이 달라서 한국 실정과는 맞지 않는 외국서적이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였던 책에서 굉장한 뭔가를 찾고 있었다. 영국 출신의 간호사였던 책의 저자 트레이시 호그가 가르쳐주는 대로, 말하지 못하는 신생아가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 열심히 밑줄을 쳤다. 표를 작성하거나 실 사례가 적힌 부분에서는 인덱스 플래그를 붙였다. 책에서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배고플 때, 기저귀가 젖었을 때, 졸릴 때가 다르다고 했다. 아이의 루틴을 파악하기 위해 책 속의 표를 그대로 노트에 그렸다. 몇 개월 동안 모유수유시간, 잠자는 시간, 응가하는 시간까지 적으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려고 애썼다. 하지만 수치적으로 아기의 상태에 접근 한 건 실수였는지 모른다.
시행착오를 거치고 둘째를 키울 땐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저 울음소리만 듣고 판단했다.
'배고픈 모양이군, 졸린 모양이야.'
하지만 정말 내가 맞았을까? 배고픈 줄 알고 분유를 타서 먹이니 10ml도 채 먹지 않고 잠드는 아기를 보고는 내가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잠들었다는 신호는 나의 휴식을 알리는 신호였고 이제 아기가 운다고 해서 잘못되진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다. 그래도 여전히 영문도 모른 채 우는 아기를 한 시간 이상 업고 달랬다. 새벽마다 힘들어서 같이 펑펑 울었다. 아이들이 정확히 자신의 상태를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어린 아기의 속내를 알기도 힘들지만 다 큰 남자라고 해도 쉽지 않다. 결혼 전 무조건 항복할 자세가 되어있던 남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결심한 듯이 보이는) 결혼 10년 차 이상의 남편이다. 그리고 세상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으리라 결심한 (결심한 듯이 보이는) 사춘기 소년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속내를 알아내는 것은 마치 미노타우로스가 사는 크레타의 미로를 빠져나오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내게는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안겨주었던 아리아드네도 없고, 그저 나의 아집과 그들의 고집만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서로 마음을 잘 헤아려 주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르고 곧게 직진으로 말해야 한다. 아픈 곳, 가려운 곳을 얘기해야만 아쉽고 서운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말로 그것을 표현해야만 하다니... 그보다 어려운 게 내겐 없다. 난 그들에게 나의 정신적, 시간적 자유를 넘겨주고 허우적댔다.
그러다 마침내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나섰다. 내 자유를 책임지기 위해 나선 것이다. 그것은 사춘기와 함께 온 팬데믹과 갱년기까지 겹겹이 쌓인 시기에 비로소 시작됐다. 모르던 자아를 찾아가는 사춘기와 잃어가던 나의 참모습을 찾는 갱년기는 참으로 많이 닮아 있었다. 그래서 더욱 힘들었지만 커다란 벽 앞에서 살아남으려는 생존 의지가 생긴 것은 다행히 아니었을까. 성큼 생존을 위해 시작한 글쓰기의 세계에서 내게로 던져진 질문을 만났다. 너를 책임지는 것은 무엇인가. 네가 원하는 삶은 무엇이며 누가 결정하는가. 바로 그런 의문이 계속되며 불안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모두에게 매달려 정작 나를 잃고 있었다. 결국 나를 책임지고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자신뿐이다. 각자의 불편은 각자가 책임져야 한다. 나는 내 삶을 꾸려가는 자유가 필요하다. 그 자유를 손에 쥐어주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