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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a Oct 04. 2022

사춘기, 팬데믹, 갱년기?

사춘기와 갱년기의 조우 (2)



팬데믹의 공포 속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큰아이가 친구들과 자신에게 몰입하고 있을 때였다. 정신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 수업이 중단되거나 화상수업이 이루어졌고 그마저도 와이파이가 튕겨져 나가기 일쑤였다. 선생님들은 처음 마주한 상황에 당황하셨다. 학습 매뉴얼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영상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큰아이는 책도 펴지 않고 팔짱을 끼고 화상수업을 그림 보듯이 감상했다. 막내는 한동안 온라인 수업을 즐기는 듯하더니 요령을 피우기 시작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까지 세 남자가 내 눈앞에서 24시간을 함께 했다. 그 정신없는 날들이 하루하루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가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는지 날짜는 분명하지 않다. 언젠가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목덜미가 쭈뼛 서며 온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가족들의 뒷모습은 조용히 걸어도 시끄럽게 걸어도 한없이 거슬렸다. 왜 수건을 빌트인 세탁기 앞에 던져놓는 건지, 어쩌자고 자꾸 세 사람이 번갈아 나오면서 다음 식단을 물어보는 건지 짜증이 치밀었다. 끊임없이 간식과 과일을 주문하는 세 남자가 먹깨비로 보였다. 나는 식당 아주머니이며 집안 도우미이며 비서였다. 평범한 일상이었으면 부딪히지 않아도 되는 일들로 힘겨웠다. 나를 위한 시간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고 늘 해오던 일마저 모두 다 지긋지긋해졌다.


게다가 폭풍 눈물로 사춘기를 맞았던 큰아들은 입학식도 못한 채 중딩이 되었다. 사춘기 소년답게 어떤 잔소리를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만큼 했다. 핸드폰을 그만 보라고 해도 한 몸처럼 떨어질 줄 몰랐고, 매일 아침 침대 위의 이불을 개라고 해도 '네'라는 대답만 하고 저녁까지 그대로였다. 1부터 100까지 못마땅했다. 모두 다 겪는 시절이라지만 점점 한계를 느꼈다. 나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꾹 누르느라 어깨에 담이 들 지경이었다. 서로 코로나로 힘든 사정을 하소연 하던 절친은 그 부글거림의 정체를 한 마디로 단정지었다.

"너, 갱년기야!"

헉! 충격적인 단어였다. 갱년기를 어학사전에서 검색했다. '갱년기 :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노년기'라니... 억울했다.


호르몬이 시키는 일이라고 해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남편이 비싼 홍삼을 슬쩍 들이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발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갑작스레 눈물도 쏟아졌고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다. 그때부터 '나'를 돌아보는 질문이 쏟아졌다. 사춘기처럼 갱년기의 호르몬도 자신을 찾으라고 종용했다. 왜 이곳에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떤 목적의식도 생기지 않았다. 지나간 모든 시간들이 후회됐다. 온전히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저 빈 껍데기가 삼시 세끼 밥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과일을 깎고 빨래를 널었다. 후회와 자책속에서 헤매다가 이런 문장을 만났다.


후회란 나 자신을 거부하는 것

후회에는 세 단계가 있다. 첫째, 어떤 행동을 한다. 둘째, 그 행동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셋째, 자책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 멈춘다면 아직은 후회가 아니다. '그만 잊어버리자'하고 극복하면 괜찮다. 그러나 '왜 그랬을까' 되뇌며 자책한다면 후회에 빠지는 것이다...
후회는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지나온 삶을 후회하는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말 것을' 하는 생각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쉽다.

철학의 힘 p.71


나는 세 번째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의 단계에서 자책하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의 저자인 김형철 교수는 니체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니체는 낙타와 사자 다음으로 어린아이를 인간 발달의 가장 높은 단계로 두었다. 마치 아이처럼 잊으라고 말한다. 미래를 위한 교훈은 얻고, 돌아갈 수 없는 과거는 과거인 채로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뒤에 미래를 응시해야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며, 후회 없는 삶은 성숙한 응시에서 나온다고 했다. 난 이렇게 텅 빈 육체와 빈곤한 정신 속에 갇혀서 살 수만은 없었다. 나에 대한 응시가 꼭 필요한 시기였다.




때마침 도서관 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막내 친구의 엄마가 톡을 보내왔다. 도서관의 무료 프로그램 링크였다. 그 친구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던 내가 떠올라서 보냈다고 했다. 사실 그전에도 그런 수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뤄두고 있었다. 이번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구청 사이트에 접속해 신청서를 작성했다. <내 삶, 나만의 글쓰기>! 정말 바로 내가 찾던 제목이었다.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다른 글쓰기 수업도 함께 신청했다.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수업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온갖 회의감은 새로운 시도에 묻혀서 발가락을 꿈틀거릴 뿐이었다.


일단 아이들과 남편이 재택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내가 수업을 들을 컴퓨터가 급하게 필요했다. 아이 화상 수업에도 필요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수업을 신청한 당일에 태블릿을 샀다. 그 태블릿은 아이의 온라인 사이트가 열리지 않았다. 덕분에 온전히 내 수업을 듣는 도구가 되었다. 집안 어디에도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적당한 공간이 없었다. 난 거실 피아노 위에 탭을 올려놓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누구를 위한 시간이 아닌 나만의 시간이었다. 나를 찾는 주제의 글을 매주 쓰면서 웅크려있던 내 존재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업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이 순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고 내가 해낼 일이 궁금해진다. 그렇게 궁금해지는 순간 우리는 인생을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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