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이상으로 여기는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분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매사를 생각하고 느끼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이 무엇보다도 꼭 필요한 것은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 용기와 강인함을 지니고 자아를 철저하게 긍정하는 일이다.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자신을 분리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로서 살아가는 순간은 언제부터일까? 프롬의 말처럼 자아를 철저하게 긍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지지하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한 생명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순간에 그 존재는 자신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자신인지 자신의 껍데기였던 엄마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태어나고 자란다. 그러다가 그는 이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2007년 8월, 예정일을 한 달 반이나 남겨두었을 때 뭐가 그리 급했는지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아니 엄격하게 얘기하면 아이는 세상에 던져졌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얘기했듯이 '인간은 자연이 던진 돌'이다. 그렇게 휙 던져진 아이가 가냘프지만 끈질긴 생명의 울음소리로 첫 발을 디뎠을 때 나는 물었다.
"너는 누구니?"
지금까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는 그렇게 내게로, 우리 집으로 왔다. 낯설지 않았던 건 아빠와 똑같이 닮은 입술뿐이었다. 도톰하고 맑은 선홍빛의 입술은 바로 9개월 동안 한 몸을 이루며 존재했던 분명한 나의 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무처럼 쑥쑥 잘 자라던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가을이 지나 추워질 무렵이었다. 아이는 학원을 다녀온 오후에 여느 때와 같이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곧 욕실에서 쏟아지는 샤워기 물줄기 소리 속에 뭔가 심상치 않은 작은 짐승 같은 흐느낌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그 흐느낌은 조금씩 커지면서 욕실 문밖으로 삐져나왔다.도대체 무슨 일인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나, 친구와 싸웠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조바심이 났지만 욕실 문에 바짝 붙어 귀를 댄 채 재촉하지 않고 아이가 나오길 기다렸다. 아이는 눈동자가 벌게져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축축한 머리를 닦으며 나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우리 아들?"
한껏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모르겠어. 그냥 눈물이 나와. 왜 이러지?"
아이는 나를 바라보지 않고 수건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때 남편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우리 눈빛은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 마주치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고 남편은 늘 그랬듯이 그 자리에 서서 입을 꾹 다물었다. 아이가 그 말을 툭 내게 던진 후 다시 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래, 그렇구나."
잠시 침묵했다.
"안방에 들어가서 마음껏 울어. 울고 싶은 만큼."
아이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아이는 방에 들어가서 오래오래 목이 쉬도록 울었다. 알 수 없는 아픔이 담겨 있었다. 조금 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방에 들어가서 아이를 꼭 껴안았다. 계속 울도록 두면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아이는 내 품에서 다시 조금 더 울었다. 그 눈물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았다. 둘째를 돌보느라 자주 안아주지 못한 사이 덩치가 커진 아이를 꼭 안고 있으니 뭉클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그때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새로운 길이 보였다. 무엇인가를 예고하듯이 낯설고 어두운 긴 터널 같은 길이었다.사춘기의 신호탄 같은 순간이었다.
좋아하는 삼겹살을 구워먹이며 허기진 몸을 채워주니 아이의 눈빛이 금방 생기를 찾았다. 아무 일 없듯이 잘 지내던 아이는 또 몇 주 간격으로 욕실에서 펑펑 울고 충혈된 눈으로 나왔다. 아이에게 닥친 계절을 준비해야 했다. 나는 서둘러 진도가 높아서 압박감을 느끼던 영어학원을 정리했다. 대신 온라인으로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가벼운 수업을 신청했다. 아이는 잘 적응해 갔고 그렇게 쏟은 눈물만큼 훌쩍 컸다. 그 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신에게 더욱 집중했다. 목소리에는 반항기를 장착했고 행동은 주도적으로 변해갔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영어 학원을 알아봐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친구들과의 소통에 온 힘을 쓰는 것처럼 보이던 아이는 사이클링을 시작했다. 허벅지의 근육이 점점 커지면서 그렇게 자신의 몸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 아인 매일 점점자신을 긍정적으로 키웠다. 불룩해져 가는 근육만큼.
그러는 동안 나는 점점 컨트롤하기 어려운 아이가 힘에 부쳤다. 소리치고 반항하는 건 아니었지만 무슨 말이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순응하기만 하던 아이라서 더 힘들었다. 그래도 제때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어 다행스럽다고 생각했고 최대한 예민한 아이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면서도 팬데믹과 겹치며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아이는 단단해지고 있는 반면 나는 나약해져 끊임없이 흔들렸다.
그 순간 '나는 어디에있을까?'라는 칼날 같은 의문이 들었다. 어디에도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소모되고 소외되는 어떤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어느 깊은 우물 속에 갇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불안하고 우울했다. 찾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다. 찾기만 한다면 그 존재를 긍정하며 나도 아이처럼 용기와 강인함을 키워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