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흥미로웠다. 대본은 완성되어 있었지만 이제부터 만들어 갈 여지가 많았기 때문인데 제목도 캐릭터도 장면도 이야기도 이제 모든 부분이 시작하는 단계였다. 처음으로 크루를 모아 시작하는 극단의 첫 작품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도 애착이 클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손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의 감정, 예전의 감정, 그리고 앞으로 느끼고 싶은 감정까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나눴다.
작품의 배경은 어느 대학교 연극 동아리였다. 사는 게 힘들지만 밝고 긍정적인 동아리 회장 ‘도훈’과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츤데레 ‘태식’, 그리고 극작가를 꿈꾸는 이 작품의 화자 ‘우리’, 셋은 친구 사이로 이야기의 주축을 담당했다. 그리고 신입생 ‘진우’와 ‘다은’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다섯 청춘의 가장 빛나는 시기에 대한 기록이자 우리의 추억을 담은 일기장이었다.
아무래도 선배들과 막역한 친구 사이를 연기해야 했기에 초반에 어색함이 컸다. 내게는 너무나도 하늘 같은 선배들에게 반말을 하고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시간들을 함께 했다. ‘도훈’ 역할의 선배와 단 둘이 간식 사러 나갔다 오거나 다같이 사우나에 가서 목욕을 한 뒤 찜질방에서 맥주를 한 잔 한다거나 연습을 마치고 술을 한 잔 마시면서 대사를 맞춰본다는 식의 시간들이 이어졌다. 내가 가지고 있던 마음의 벽이 하나씩 허물어질수록 연기가 자연스러워졌기보다 그들이 자연스러워졌다.
가끔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 시간보다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 그리고 진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머뭇거림과 두려움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같은 방향에 서서 지켜봤고 기다려줬다. 내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은 몇 번이고 대사를 맞춰주었고 나를 격려해줬고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었다. 처음으로 연기가 재미있다 생각을 했다. 그간 내게 연기란 끝없는 경쟁이었고 실체 없는 싸움이었다. 나를 보여주지 못함에 괴로웠고 외로웠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는 연습실에 가는 게 참 좋았다.
작품은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었는데 내가 맡았던 ‘우리’가 우리 다섯의 이야기를 담은 대본을 나머지 친구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극이 시작이 된다. 연습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났을까. 극의 제목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의 시간을 가졌는데 우리의 평균 연령을 어리게 만들어 준 ‘다은’ 역할의 후배가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고 우린 모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우리가 우리에게”
극중 ‘우리’가 남긴 우리 이야기를 받았기 때문에 딱 맞아떨어지는 제목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갖고 있는 가장 빛나는 청춘의 시간을 관객들이 선물처럼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이길 바라는 마음도 잘 담아낸 제목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연극이자 내 평생의 편이 생긴 작품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우리’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기도 한데 동시에 미소가 지어진다. 나에게 ‘우리’는 내 생애 가장 빛나는 장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