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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미리내 Oct 29. 2020

베레모의 특별함이란

둘레 52cm 사이즈는  M

꾸밈에 대한 기준이 씻고 안 씻고의 단순한 기준으로라도 난 그다지 꾸밈에 소질이 없는 편이다.

머리야 이틀에 한번 감는 게  기본 루틴이고 , 때에 따라서 삼사일도 너끈하며  샤워야 한여름이 아닌 한 하루 걸러 혹은 더 걸러쯤 가능한 나의 기준으로 따지면 말이다. 유난히 환경을 걱정하고 후대를 사랑하는 지극함에서 빚어진, (실제로 우리나라는 관개시설이 좋을 뿐, 물 부족 국가이다) 전 인류애적인 마인드는 아니지만 고수를 못 견뎌하는 걸 보니 체취를 뿜는 DNA가 희박하다는 어디선가 봤던 기사에 근거해서 더 당당히 지키는 루틴이다.


그러나 피부는 건성이고 두피는 지성인,  내 DNA의 선택적 오일리 함에 따라 (참 대단한 모순 아닌가, 피부에도 모공이 있고 두피도 피부이고 보면 말이다) 샤워와 머리감기를 함께할 수 없는, 그 간격이 문제가 될 때가 있다.

가령 샤워와 머리감기를 같이 했다고 치자,, 샤워의 유지기한은 3일 , 머리는 2일.. 돌아오는 첫 순번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이럴 때 머리를 건너뛰거나 샤워를 건너뛰거나 혹은 둘다를 행할지 여부는  그날의 스케줄, 외출의 지속시간, 만나는 장소 등 다각적인 통찰에 따라 달라진다.


대부분 사적인 외출일 때 머리감기를 패스하고 모자나 후드티로 대체하는 순간이 압도적이다.

하여 모자는 꾸밈에 대한 열망이나 인식이 박한 내게 거의 유일의 액세서리이다. 겨울엔 털이 덥수룩한 밤 장수 모자가 추위와 더불어 해결해주고, 여름엔 야구모자가 볕과 머리카락을 가려주지만 간절기가 항상 애매하게 문제가 된다. 오늘같이 자전거를 탈 때 맵싸한 정도의 날씨라면? 군밤 모자는 애초에 꺼내지도 않을 때고 , 여름내 사용하던 야구모자는  약간의 때탐과 질림과  가을 착장에 어긋남으로 인해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때, 내 선택은 베레모가 된다.


본시 베레모라 하면 프랑스에서 화가나 예술가들이 머리에 얹거나 아이돌이  꾸안꾸 사복패션에 포인트로 사용하는 ,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형태의 모자가 아닌가. 계절 또한 중요하다. 한겨울, 한여름은 일단 어울리지 않고 굳이 필요치 않다. 간절기에 어울리는 소품이나,  지구온난화로 간절기를 딱 맞춰내기가 어렵게 됐다.(올해도 빙하가 많이 녹았다지... 간절기와의 눈치게임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듯하다)

선택적인 상황과 장소에 어울릴법한 베레모를 멋과 거리가 다소간 있는 내가 선택하게   색깔과 형태 그리고 약간의 로망 때문이다.


널찍하게 두상의 형태와 상관없이 두상 윗부분을 감싸 두피를 보호(외부로부터의 보호인지 , 외부의 시선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는 씻는 루틴에 따라)하고  어제 입고 그그제 입던 아래, 위의 옷 조합에  새로움을 더할 수 도 있고 날씨가 적당히 쌀쌀할 때 머리만 감싸도 옷차림은 한 꺼풀쯤 가벼워질 수 있을 만큼  보온의 역할도 크다. 거기에 더불어 파란색이다. 파란색이라니... 파란색이라니!!! 꼭 사야만 했다.

그리고 베레모는 애매한 내 두상에 최적의 맞춤을 자랑하는 유연함을 가지고 있다.

 

둘레 52cm 사이즈 M

내 두상의 스펙이다.


표준적인 중간 크기의 두상이다. 크기로도 서양과 동양인의 차이는 별반 없다. 형태의 차이가 착시를 만들어 더 작고 좋은 비율로 보일 뿐이다.  서양인은 앞뒤로 나와 같은 동양인은 주로 옆으로 긴 형태라 야구모자와 머리띠를 비롯한 머리에 이고 지고 붙이는  웬만한 형태의 것들은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그런 내 머리에 완벽히 착 안착하는 게 베레모다.

이런 베레모의 이점을 익히 알고도 올해 처음 사고, 오늘 처음 쓰고 거리로 나온 건 위에 언급한 베레모에 대한

지엽적이고 특수한 상황과 장소에 어울린다는 편견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자전거를 타기엔 날씨가 제법 쌀쌀했고 휴일이라 굳이 머리를 감고 싶지 않았고, 글을 쓰기 위해 카페는 가고 싶었던 , 베레모를 쓰기 완벽한 그날이 왔다.

어두운 , 교복같이 입고 다니는  위아래 옷에 쨍한 파란색 베레모를 머리에 얹고 자전거를 타고 카페에 오는 동안  몇주를 망설이다 꺼내지 못했던 그간의 시간이 허무할 만큼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신이 났다.

그저 셀카를 빨리 찍고 싶었을 뿐.


마음속에만 두었던 글쓰기와 베레모 , 같은 날 세상에 나와 앞으로 여러 해의 계절을 겪으면서 짝꿍이 될 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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