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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미리내 Oct 27. 2020

호모스마트포너

아이폰7 그리고 모스크바의 신사.

1년 전 새로 바꾼 아이폰 7을 사용하기 전까지 내 휴대폰은 스마트폰의 외양만 가진,  구성은 3G인 5년 차     중고 터치 폰이었다. 충전기로 밥을 배불리 먹여놓고 돌아서 화면을 좀 만질라치면 토사곽란에 걸린 양 발열과 방전을 반복하며 은퇴를 향한 필사의 저항을 하기에 24개월 할부로 새 휴대폰, 무려 애플폰을 장만했다.


XS, 7,8...  모델명이 두 자리 숫자를 넘어가고 , 더 이상 힙함의 대명사가 아닌, 이미 트렌드는 삼성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뭘 바라고 힙스러움의 부스러기를 붙잡아 굳이 사과를 선택했느냐 한다면 조금은 억울한 듯     그저, 작은 화면이 좋아 선택했다로 말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진짜 스마트폰은 처음이었기에 배터리 오래 사용하는 법을 검색하며 유튜브와 뱅킹.. 이외 폰을 혹사시킬 듯 한 앱들은 모조리 컴퓨터를 이용하고, 하루에 한 번씩 배터리 성능 상태를  체크하며 오래 쓸 것을 다짐했었다. 전화기의 본 용도에 충실하며 스마트폰을 구부정하게 들여다보는, 호모스마트포너는 되지 말아야겠다 싶은 다짐도 물론 있었다.


그리고 겨우 약정의 반을 지난 지금, 내 스마트폰 화면엔  하루 스마트폰 사용량과 패턴을 알려주는 스크린  타임을 설치해두고 체크하며,  애써 노력하지 않는 한 하루 5시간 이상 폰을 들여다보는 바보짓을 피하기가 힘들다.

다섯 시간 이라니... 부지런한 누구에겐 하루치 수면 시간 이겠고, 학생에겐 공부하는 시간,  아르바이트로  용돈과 생활비를 벌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속절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SNS를 넘기고 유튜브 클립을    시청하고  온라인 서핑을 하고.. 하는 기타 등등 잡다한 시간으로 허비되고 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버나드가 한 말을 여기에 가져다 쓰기엔 20%쯤 초점이 빗나가겠지만 목을 길게 빼고 다리를 꼰 채 휴대폰을 든 내 모습을 표현하기에 우물쭈물 만큼 적당한 말은 없기에 모르는 척      써야겠다.

혼자 있기 적당한 시간일 때 늘 손에 들었던 책 대신 우물쭈물 거리며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별 관심도 없는 영상을 찾아보며 스마트폰에 적응하고,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일이 많아지고 오래되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브이로그를 찍어 유튜버가 된다거나, SNS를 기막히게 구성해서  인플루언서가 된다거나 하는 희박한 확률의 (여기에 살짝 내 비겁함이 들어간다.. 희박한 확률이라니 , 찾아보면 꽤 많다) 순기능을 탑재한 창의적 변화가 아니라 어... 그.. 저.... 를 남발하며 사용하는 어휘의 급감과 건망증이라는 다분히 높은 확률의(비겁함 2)   디지털 치매라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나에게 인간관계란 넓고 깊다는 맞지 않고, 좁고 깊게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 생각하고, 그저 일상을 나누고 소소하게 잔 감정을 공유할 정도의 친구와 가족이면 족한 사람인데 이 1년 동안의 내 변화는        대화 상대의 부재를 절실히 느끼게 만들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은 같고 대화의 수위도 비슷하니, 이  공허함과 갈증의 원인이 뭘까...  드디어 어른이 되어 정치와 사회와 문화와 인간의 본질에 대해 깊게 토론할 철학적 사유가 생긴 건가..   싶은 말도 안 되는 기대를 잠깐 품어 대화 클럽을 소심하게 물색해 보았으나 내 갈증의 원인은  단순하고 뼈아프게도 스마트폰 중독에 따른 독서량의 급감,,, 그로 인한  내 소중하고 대단한 책 속 친구들을 잃어버린 데에서 온 공허함이었다. 


인상적이고 존경스러운 내 마지막 책 친구는 1년 전에 읽었던 모스크바의 신사,, 그 백작이 끝이었다.         (맙소사.. 잘 계신가요? 딸을 만나러 파리도 가고 여배우와 다시 만나 군침 나게 소개하던 고향의 사과도     다시 맛보고 그러셨나요, 백작님?) 


하루에 빈손으로 날 반기는 시간이 다섯 시간 남짓인데 그 시간을 통으로 스마트폰에게 제물로 바쳤으니 ,   유흥의 측면에서 보자면 독서나 우물쭈물 스마트폰을 만지는 거나 같은 분류겠지만 전자는 유흥에 덤으로  친구와 경험과 감정을 주었다면, 후자는 근시 난시 짝짝이의 눈과 안구건조증, 성마르게  페이지와 동영상  랩타임을 앞뒤로 넘기는 손가락 스냅에 의한 건초염이었다.(다시 말하지만 난 다분한 확률로 스마트폰의 폐해에 흠뻑 적셔졌다.비검함 3) 


괜스레 친구와 가족을 의혹의 눈빛으로 보며 대화 상대로서의 그들의 자질을 의심하고 안타까워했는데,      실은  밥은 안 먹고 디저트만 부지런히 찾아 먹으며 속절없이 찌는 살들을 붙잡고, 지극히 정상인 기초대사량과 호르몬과 공평치 못한 DNA탓을 하며 비만클리닉을 들락거리는 행태와 같달까


공허함의 원인을 찾았고 해결을 위해 더 열심히 휴대폰을 체크하며 하루 사용시간을 1/5로 줄이기 시작했다.

이틀은 어렵지 않았다. 59분 58분 컷으로 잘 마무리하고 놓았던 책들을 꺼냈고, 내친김에 사두고 읽지 않던 원서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3일째, 인간 특히 한국인과 3은 본원적 인연인가 싶게 3일 만에 내 스크린    타임은 다시 5시간을 넘어 6시간 신기록을 뚫기 직전으로 상승 회귀했다.


원서에 찾아볼 단어가 너무 많았고, 즐겨보는 유투버의 라이브 방송도 있었고 , 사야 할게  많았던 듯도 하다. 

그리고 쓸데없이 커피를 마셔 깨어있는 시간도 늘어난 탓도 있다. 더불어 1년이 만든 관성이 만만찮은 녀석임을 알게 됐다. 1년을 꼬박 충성스러운 친구였으니 쉽게 손절이 어렵다.


그렇다면 거리두기 2단계로 조절을 좀 해두어야겠다. 책을 꺼냈고, 오래전에 사두었던 수채화 독학 키트도 꺼냈다. 그리고 나의 변화를 위해 하나 더, 묵혀두던 노트북을 꺼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억지로 엉덩이를 붙이고 휴대폰을 놓고, 노트북을 켜고, 굳어있는 머리를 굴리고 영감이란 걸 받기 위해      책 속 친구들을 불러내어 글쓰기를 통해 마무리하고 결과를  만들려는 나의 영리하고 오만하고  쉽고 무모한 (여기에 어울리지 않을 형용사는 없다) 계획을 지금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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