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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미리내 Oct 27. 2020

이건 오로지 나와 모기의 싸움

스텔스, 이륙하다.

애애애앵... 여름 모기가 폭격기라면 가을 모기는 스텔스다.

소리 없이 빠르게 다가와 지독한 가려움과 붓기를 남긴다. 참이 못해 벅벅 긁게 되면 자국은 치명적이다.

아주 늦은 여름, 얇지 않은 이불을 덮을 때쯤, 매미도 7년의 시간을 한 계절에 쏟아붓고 , 예전 같으면 태반이  아이들 방학숙제로 공책이나 액자 속으로 잡혀 들어갔겠지만 그저 나무 아래 드문드문 사체로 뒹굴 즘 ,          가을 모기의 짧고 굵은 시기가 도래했다.


매년 당하면서 역시나 순간에 적응하는 인간답게 선선해진 날씨에 만족하여 선풍기도 치우고, 여름이불은 벌써 개어 던지고,  여름내 거실 여기저기 떠돌던 모기채, 모기약은 선반 깊숙이 정리하고 산뜻함을 만끽하는 며칠, 새벽잠을 깨우는 스텔스의 공격이 시작됐다.


분명 성가신 소리도 없이 단잠에 스륵 빠질 때였는데 이상하게  이마가 자꾸 간지럽다. 익숙한 듯한 가려움이지만 이 녀석이라고는 쉽게 짐작을 못하고 그저 벅벅 긁다 다시 잠에 스륵 빠진다.

이번엔 다리다. 몸은 포근히 이불로 감싸고 발은 이불밖에 내놓고 상쾌함을 느끼는 , 간절기에 최적화된 자세로 잠을 자던 중,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 왔다.


 순간 눈이 번쩍 떠진다. '왔다, 그 녀석이 왔다'

후다닥 일어나 불을 탁 소리 나게 손바닥으로 쳐서 키면 눈에 찌르르 통증이 밀려들며 온방이 환히 빛난다.

... 눈이 빛에 적응하느라 찡그려  사이 이미 어딘가로 피하고 없을  알면서 혹시나 싶어   둘러본다.  피해 규모를 살펴본다. 오른 발등에 발갛게 부은 자국이   반의 반쪽 크기로 솟아있다.

몇 모금  빨지 못한 듯하다. 이마는? 첫 공략지인 이마는 충분히 빨린 듯 모공이 투둘투둘 보일만큼 널찍한 웅덩이 모양으로 부어있다. 급한 대로 손가락으로 열십자를 찍어 누르고 침을 살짝 발라둔다.


짙은 나무 색깔의 문이나 창문 프레임을 찬찬히 살펴본다. 모기가 색을 구별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여름 모기는 8할 이상의 확률로 자기 몸 색깔과 비슷한 방문과 창문틀에 붙어 있었다.

방문, 창문틀 어디에도 없다. 혹시나 싶어 의자에 걸린 옷들을 뒤적여 보지만 날아오르는 기척은  없다.

역시.. 이 녀석은,  알에서 깨어 세상에 첫 날개를 피고' 덤벼라 세상아 ' 수준의 애애애앵 bgm을 깔며  무모하게 먹이로 곧장 달려들던 여름 모기와는 다른 진화된 형태의 가을 모기다. 스텔스.. 너인가?


불을 켜 둔 채 자리에 누워 다리 끝까지 이불로 꽁꽁 빈틈없이 메운 후 잠든 척 위장술을 펼친다.

이대로 1분. 2분... 3분.... 여름 모기였다면 다시 먹이를 향해 날아오를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5분.. 7분... 스텔스 이 녀석은 꿈쩍하지 않는다.

인간의 수면 행위의 정의를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하다. 밝음=각성, 어둠=잠

모기의 지능은 여름에서 가을로 일회성 진화를 하는 게 아닐까. 내년 여름엔 다시 순진한 모기로 돌아오더라도 가을 모기에겐 여름의 패배 , 그 결정적 패착을  찌그러진 사체 어딘가가 아닌 공중에 메아리쳐 동료들에게  알린다던가 , 혹은  동족의 죽음을 눈으로 기억하고 dna에 새겨 가을에 태어날 종을 진화된 형태로 출산하는 그런 프로세스가 있지 않을까.. 싶게 스텔스, 이 녀석은 10분이 넘게 꼼짝 않고 나와 대치중이다.


좋다... 나도 그리 쉽게 걸려들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오늘 밤은 길겠군...

불을 끄고 다시 한번 이불을 꼭꼭 싸매고 잠들지 않으나 잠든 척  오감을 세우고 녀석의 비행을 기다린다.

소리는 없으나 일평생 모기에게 물린 횟수, 그 어마어마한 기억은 내 피부 깊숙이 새겨져 있다. 일단, 다가오면 알 것이다.  와라!


몇 단락 전 , 인간이 적응에 빠르다고 했던가.. 위장에 먼저 무너진 건 내쪽이다. 까뭇 잠들 들었다. 이번엔 반대쪽 뺨이다.

피해규모는 처음과 동일한 수준의 완전한 참패다. 하룻밤에 세 방이라.. 어지간히 배가 큰 녀석이군.....

이 정도면 빨갛게 통통히 튀어나온 배를 붙들고 만족스레 잠들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기대를 품으며 , 자존심은 조금 상하지만 아침까지 휴전을 맺기로 하고 맘 편히 잠들기 시작했다... 그랬다면 좋겠을 것을.. 넌 선을 넘었어.

이번엔 팔이다. 그래.. 이렇게까지 욕심을 부린다면 어쩔 수 없다. 전면전이다.


난 전기모기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모기를 상대로 너무 거대하고 근사한 무기로 맞서는, 마치 ufc 선수가  아마추어  동호인을 맞아 풀파워로 힘을 쓰는 모양새라, 일견 비인간적으로 느껴져 되도록 손바닥으로 맞선다.

 먹고 먹히는 온전히 본인의 능력으로 생과사가 결정지어지는 자연의 장에 반칙을 쓰는, 심히 불경스러운 느낌마저 들어 쓰지 않는 모기채는 거실 소파 어딘가 깊숙들어가 있다.


이제 모기채를 꺼내들 순간이 왔다. 여름 모기였다면 손바닥으로 충분했을 거다. 물리더라도 애애앵 소리하나 감지 못하고 굼뜨게 행동한 나를 질책하며 몇 방울의 피쯤 자연에 헌납한 셈 치고 참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텔스.. 넌 다르다. 모기의 근원적 정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무음 상태로 다가오며 더구나 급격한 지능의  발전으로 무장한 그대는 마치 좀비나 헐크 수준의,  종의 한계와 정의를 뛰어넘은 존재이다.

무기를 장착함이 공평하다. 녀석의 퇴로를 막기 위해 재빨리 방문을 열었다 닫고, 더듬거리며 소파 밑을 뒤져 전기모기채를 찾아왔다.


이제... 반격의 시간이다.  의자 , 책상 아래, 책장, 옷장을 차례차례 뒤지며 진동으로 녀석을 도발한다.

나와라! 모기채로 쿡쿡 찌르고, 손으로 책상을 헤집으며 녀석의 은신처를 공략한 끝에 시야 끝 기체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엄지로 모기채의 스위치를 꾹 누르며 재빨리 포핸드로 휘두른다. 타닷!

잡았는가? 잡았어? 소리는 들렸으나 신중해야 한다. 바닥에 떨어진 스텔스의 잔해를 찾아야 한다.

노란 장판 위에 갈색의 스텔스, 기체의 잔해가 떨어져 있다. 조심스레 들어 올려  휴지통에서 코 푼 휴지를 꺼내 들고 구겨진 휴지 사이로 눌러본다. 핏물이 번진다. 잡았다.. 고스란히 내 피를 토해내고 납작해진 스텔스.


만족감은 아니다. 개운함 혹은 통쾌함  언저리 어디쯤의 작은 감상이 있었고 녀석의 우주는 끝이 났으나 것은 남았기에 잠이 영영 멀어지기 전에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새 벽,  꿈인 듯 무수한 가려움에 시달렸고  내 팔다리엔 서너 방의  모기 자국이 더 생겨있었다.

앙팡진 상처 또한 덧대어 있었다. 잠결에 신나게 긁었나 보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가을 모기에 완벽히 농락당했다. 인간으로서 우위를 지키고, 자연의 섭리 운운하며 도구를 쓰지 않겠다던 내 도도한 다짐을 무너뜨린,  한 마리가 아닐지 모르는 스텔스는 여전히 살아남아 집안 어딘가 은신처에 숨어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른 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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