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주차
저녁 10:30분쯤이었다. 치킨을 시켰다. 후라이드 반+양념 반을 시켰다. 늘 먹던 곳에서 시키지 않았다. 식상한 야식인 치킨에 약간의 변주를 주어 ‘새로운’ 치킨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11시 반쯤 도착한 치킨을 친구 삼아 옆지기와 함께 넷플릭스를 켰다. 토요일 저녁 11시쯤 우리는 별 다른 일이 없으면 약속처럼 특정 프로그램을 보던 터였다. 옆지기가 좋아하며, 나도 좋아하게 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넷플릭스라니.
“이거 7부작이래. 볼 까?”
“지금?“
“응. 오늘 A(토요일 저녁에 보던 프로그램)는 별로 재미없을 것 같아.”
새로운 곳에서 시킨 치킨과 함께하는 새로운 시리즈를 시청하는 토요일이라니! 꽤나 흥미진진한 주말이라 생각됐다.
치킨과 함께 시작된 흥미진진한 주말은 어느덧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조금 졸면서 보긴 했으나 끊기 힘들 만큼의 흡입력이 있었다. 내일을 위해 이제 그만 자자를 외치고 우리는 내일 코가 삐뚤어지게 자자고 다짐하며 서로의 온기를 베개 삼아 잠을 청했다.
갑자기 눈이 떠졌다. 새벽 6시가 채 안 된 시간이었다. 눈 뜨자마자 느낀 건 ‘메스꺼움’이었다. 구역감과 더부룩한 속 때문에 잠에서 깼던 것이었다.
‘아 괜히 치킨 먹고 잤어. 단단히 체한 거 같네.’
옆지기가 깰까 봐 살며시 일어나서 흥미진진한 주말을 안겨주었던 TV방으로 향해 소파에 엉거주춤 앉았다. 흥미진진했던 느낌은 온 데 간 데 없어졌고, 괴로움과 메스꺼움이 날 괴롭히고 있었다.
눈을 감은채 얼마나 앉아있었는지 모르겠다.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소화제를 먹었다. 그리곤 화장실을 다녀왔다. 기력 빠진 채 TV방바닥에 누웠다. 언제 구토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 예전엔 아무리 저녁 늦게 뭘 먹어도, 잘 소화했는데. 고작 치킨 몇 조각 먹었다고 체하냐. 먹고 바로 누운 것도 아니잖아. 몇 시간이나 지나서 누운 건데.‘
짜증 났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내가 시킨 치킨집의 튀김 기름이 상당히 오래된 기름이라 체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치킨집 사장님을 원망하는 지경이었다. 불편한 속을 달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고, 짜증은 곧 서글픔으로 바뀌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밤잠 없이 아이에게 몰입해야 한다던데, 고작 체한 것 가지고 이렇게 괴로워하면 우리 튼튼이를 내가 돌볼 수 있을까? 역시 내가 너무 늙어버린 것은 아닐까? … 치킨 따위에게 진 내 몸이 밉다.’
누군가 잘 수 있을 때 실컷 자두라고 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육아 선배들이 같은 말을 했다. 비슷한 말로 여유를 즐길 수 있을 때 실컷 즐겨두라는 이야기도 꽤나 많이 들었던 터였다.
서글픔과 뒤섞인 짜증은 소화제의 약효가 퍼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11시가 지나서야 옆지기와 나는 일어났다. 새벽의 일들을 옆지기에게 하소연하듯 털어놓았다.
“난 그게 궁금해.”
“뭐가?”
“언제 치킨을 먹고 싶다고 이야기할지 말이야.”
치킨은 한동안 안 먹고 싶다는 내 이야기에 대해 옆지기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치킨에 대한 이 미움(?)이 언젠가는 사라지겠지? 그리고 난 다시 치킨을 먹자고 할 거야. 평생 먹고 싶지 않을 것 같진 않거든… 육아를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 또한 계속 이어지진 않을 거야.‘
오늘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먹었다. 많이 먹진 않았다. 새벽에 경험한 메스꺼움을 다시 떠올리기 싫었고, 내 몸의 소화능력이 떨어져 간다는 것을 확인하기 싫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