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by 사탕볼

지구에서 가장 작은 학급.

6학년 1반 남학생 0명, 여학생 1명 담임교사 사탕볼.

칠판도 큰 TV도 필요 없이 노트북 하나와 책, 연습장으로 둥근 테이블에 옆에 붙어 앉아 수업을 한다. 공교육이지만 전 과목 개인 과외 선생님이다.

유라는 다문화가정으로 엄마가 아주 젊을 때 시집와서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할 때 낳은 첫째 딸이다. 밑으로 둘째, 셋째, 넷째 여동생이 있고 남동생이 하나 있고 그 밑에 막내 여동생이 하나 더 있다. 다른 동생들은 발음이 많이 나쁘지 않은데 언어발달이 필요한 시기에 엄마와의 상호작용이 부족해서인지 첫째 딸 유라만 발음이 많이 어눌하다.

그 와중에 1학년부터 5학년까지 함께 지내던 단 한 명의 같은 반 남학생 친구는 청각장애로 말을 하지 못했다.

“어~~ 우~ 우!” 하면서 수어와 손짓 발짓으로 말을 걸면

유라는 말을 할 수 있으면서도

“우! 우! 어~ 어~.” 하고 서로 웃고 떠들었다..

그러던 친구가 6학년 올라오자마자 전학을 갔다. 말은 주고받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서로 잘 통하던 친구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5년 동안 친구와 함께 하던 교실에 볼선생과 유라 둘만 있다. 친구 없는 교실에서 유라는 더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이 되었다.

“유라야, 책에 연극이 나오네~ 우리 같이 연극해 볼까?”

“...........”

“제목이 뭔지 보자~ 말괄량이 삐삐네. 그럼 우리 유라가 삐삐 할까?”

“...........”

“어머! 연극 안에도 선생님이 있네. 선생님 역할은 선생님이 하는 걸로. 그럼 토마스는… 토마스도 선생님이 하고 아니카도 음… 아니카도 선생님이 하고….”

결국 삐삐 말고는 다 볼선생이 한다.

겨우 대본 리딩을 한번 마치고 이제 실전 연극이다. 첫 장면은 삐삐가 말을 끌고 무대로 나오는 장면이다. 유라 아니 삐삐가 볼선생을 교실 가운데로 끌고 간다. 삐삐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말소리를 내보았지만 괜한 짓을 한 것 같다.

뻣뻣하게 서서 책을 읽는 삐삐를 세워두고 왔다 갔다 하며 토마스였다가 아니카였다가 아주 가관이다. 겨우 연극을 마치고 있지도 않은 관객을 향해 유라와 손을 잡고 둘이 멋지게 인사를 한다.

연극을 마치고 요즘 말로 현타를 맞은 둘은 교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쉰다.

“유라야, 연극하니까 재밌었어?”

“네.”

“그래? 재밌었어? 그럼 우리 한 번 더 할까?”

“아니오.”

그래. 물어본 선생이 바보지. 뭐가 재밌었을까.


1년을 그렇게 보내고 드디어 졸업식이다.

졸업생은 유라 1명인데 내빈은 면장님, 동문회장님, 우체국장님, 파출소장님, 농협지점장님이 오셨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어느 졸업식이나 다 지겹긴 마찬가지다.

식순에 따라 재학생의 송사 다음으로 졸업생 답사가 이어진다.

답사 원고는 유라와 내가 함께 쓰고 또박또박 읽는 연습을 많이 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어눌하게 보이지 않게 하려고 맹연습을 했다.

“1학년 때 처음 학교에 입학했던 것이 어제 같은데….”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평범한 답사다.

“동.. 생.. 들아.. 그동안 고마웠어.”

유라가 눈물을 참으며 읽는다. 그러자 듣는 후배들도 눈물을 찍어낸다.

“선생님… 가르.. 쳐… 주.. 셔서…”

말을 못 할 정도로 운다. 한참 울다가 겨우 이어서 말을 한다. 말이 어눌할까 걱정되어 그렇게나 연습했는데 아무 필요가 없다. 우느라 표가 하나도 안 난다.

“감사합니다.”

한참을 서서 운다.

주위를 둘러보니 1명 졸업이라 자리가 썰렁할까 걱정되어 참석한 학부모님도 눈물을 훔치고 심지어 면장님도 코끝이 빨갛다.

볼선생은… 사실 유라가 답사하러 무대에 올라섰을 때부터 울기 시작했다. 슬쩍슬쩍 눈물을 닦아 내다가 이내 줄줄 눈물을 흘리다가 선생님 고맙습니다에서는 아예 엉엉 운다.

답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유라가 볼선생에게 와서 안긴다. 먼저 말을 붙이는 일이 거의 없던 유라지만 헤어지는 날엔 아기처럼 품에 쏙 들어온다.

동문회장님은 요즘은 이렇게 우는 졸업식이 없는데 꼭 옛날 졸업식 같다고 자기도 눈물이 났다 하시고 옆에 학부모님은 선생님 쓰러지겠다고 그만 우시라고 볼선생을 달랜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둘은 마지막 셀카를 찍는다.

그렇게 참석한 모든 이들의 눈물을 쏙 빼고 졸업식은 끝이 났다.


12년 후 다른 학교에서 유라와 꼭 닮은 여학생을 만났다. 가까이 가서 보니 보청기를 하고 있다. 이름이 뭐냐고 물어본다. 못 알아듣는다.

졸업식 때 유라와 찍은 사진을 드라이브에서 어렵게 찾아내 보여주었더니 깜짝 놀란다. 유라의 막냇동생이다. 유라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계속 같은 수어만 반복한다.

언니.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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