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나로 성장하기, 네 번째 파편
햇빛 쨍쨍하고 바람은 시원한 그런 날이 좋다.
보슬보슬 내리던 억수로 퍼붓던 비 내리는 날도 좋다.
세상을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버리는 눈이 펑펑 내리는 날도 좋다.
유일하게 우중충 한 날은 아직은 좋아지지 않는다.
이런 날은 이상하게 기운이 안 난다.
분명 눈 떠서 아침을 먹고 루틴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눈을 뜬 건지 만 거지 보이는 세상은 흐릿하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래서 카페로 왔다. 커피를 마셔야겠다.
가을이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떠날 채비 중인지
춥다. 몸이 따뜻한 뭔가가 필요하다고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늘 시키던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아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커피가 나왔다. 뜨거웠다.
자리에 앉아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추위는 더 이상 안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커피를 한 모금 주입하고 싶었는데 기다려야 했다. 뜨거운 걸 잘 못 먹는다.
즉각적인 만족에 충실한 몸이 돼버린 걸까
그냥 아아 시킬걸
이 짧은 기다림이 싫어서 잠깐 후회하려던 찰나
생각이 났다. 지난겨울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는 걸
그때도 똑같은 생각의 흐름이 있었고 뜨거운 커피가 조금 식어 마시기 딱 좋을 때
따뜻한 액체가 목을 넘어 식도로 내려가면서 내 몸을 덥혀주는 그 느낌!
'아 이게 따뜻한 커피의 매력이구나'를 느꼈던 기억이
코인 열풍 때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소액으로 코인 거래를 했던 적이 있다.
며칠을 기다려서라도 때를 기다려 매수하고 매도하는 친구가 있었다.
반면에 나는 단타 중에서도 스캘핑이라 불리는 초단타가 더 끌렸다.
전문투자자에게는 그게 기법이고, 성향이 될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단지 기다림을 잘 못해서였던 것 같다.
사회초년생 때 그림이 좋아서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기초도 없는 경험도 없는 내가 이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십몇 년을 공부하고 업으로 해온 분들 사이에서 내가 설 수 있는 한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 현실의 벽은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너무 높게만 느껴졌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돈이 되는 일을 하는 게 맞고
하나를 정해서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그것에만 쏟아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림은 이런저런 이유로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고 그렇게 한동안 손에서 아주 놓아버렸다.
인생에서 빠른 성취를 이뤄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현실의 벽 앞에서 포기라는 단어밖에 안 떠올랐다.
그런데 정말 좋아하는 것이라면 언젠간 다시 하게 되더라. 업의 형태가 됐던 취미가 됐던.
그림이 그랬다. 시간이 지나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림이었다.
그림이 왜 좋은지 다시 생각해본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풀 밭에 누워 바람과 여유를 느끼면 참 좋겠다고 가끔 상상해본다.
하지만 막상 돗자리 없이 풀 밭에 누우면 개미나 작은 벌레가 몸에 기어올라... 으윽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좋은 것도 가까이에서 보면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도 그다지 아름답지 않지만 난 현실 속에 살고 있고 살아야만 한다.
그래서 그림이라는 세상 속에는, 캔버스 안에는 아름다움을 넣고 싶다.
그게 내가 그림을 좋아하고 그리고 싶은 이유였다.
업이 아니고 전문가가 못되면 어떠한가.
나를 위해서 필요했고 하고 싶었다.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이걸로도 충분했고 포기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돈을 버는 일도 중요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손에서 아주 놔버리면 시간이 지나고 나를 다시 돌아보는 순간에,
그동안 아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해왔으면 지금쯤 분명 성장했을 텐데 라는 후회를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이젠 하루 계획에 그림연습 한 시간을 집어넣었고 해오고 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막상 글로 적어내려면 잘 안 되는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로 연습과 공부가 필요했다.
그림 외에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컨대 운동과 책 읽기는 루틴으로 꼭 지키려고 한다.
투자하는 시간이 얼마 안돼 성장이 눈에 보일만큼 바로 안 나오지만,
양이 축적돼야 질의 변화가 있음을 믿고 행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커피가 딱 마시기 좋을 정도의 온도가 됐다.
한 모금 마셔본다.
따뜻한 커피가 목을 넘어 식도로 내려가면서 내 몸을 덥혀준다.
아아의 시원함도 좋지만, 기다림이 필요한 따뜻한 아메리카노의 매력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