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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Dec 26. 2023

빛 너머로: 소망

숨 죽은 희망, 소리 없는 눈물, 그리고 외침과 감사  

행복하다. 그리고 때론 슬프다. 그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어도 살아야 한다. 사는 게 이렇게도 치열해야 하는 건지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내가 기대했던 삶과 너무 다른 삶이기에 나는 매일매일 줄다리기를 하면서 나를 내려놓아야 했다. 원했던 일과 그렇게 꿈꾸며 그려놓은 사랑과 환경과 소중한 마음과 분위기와 그 모든 것을 너무나 간절히 바랐었기에 맛만 보았던 일상들이 마음속에서 자꾸 튀어나올 때면 그때가 너무 행복했어서인지 지금이 슬프다 느꼈었다. 오늘의 행복도 내일의 슬픔이 돼버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제의 행복으로 인한 오늘의 슬픔 가운데 머무르기 싫어 오늘의 행복을 찾아 지금을 살아왔다. 눈물이 났다. '언제 강했던가, 나는?' 이 질문을 되뇌며, 몸부림도 쳐봤다.


희미한 커튼 사이로 나는 계속해서 그 커튼 너머로 손을 뻗는다. 커튼 한 장을 두고도 안과 밖의 공기가 다르다. 나는 바깥공기가 좋아 어떻게든 손을 뻗는다. 멀쩡한 두 발을 가지고 걸어 나가고 싶지만 발이 묶여 나갈 수가 없다. 그러나 곧 나갈 것이라고 계속 되뇐다. 내 발에 묶여있는 이 모든 것들을 끊어버리고 나가버릴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나는 계속 포기하지 않고 힘을 기를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먹을수록 인생의 중요한 시기들은 이미 다 지나가버렸다고 아쉬워말고 현재에 만족하고 살라 말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 어쩌면 이 시기만큼은 내 중요한 시기들이 모두 지나갔다고 믿고 싶지 않다. 해맑게 웃던 어린아이였을 때에도, 세상 가득 꿈을 꾸며 공부했던 청소년기에도, 한 가지 공부에 모든 시간과 마음을 쏟았던 20대에도, 새로운 가정에 삶을 헌신해야 할 지금의 때에도, 나는 나를 밝히 비추는 빛을 붙잡고 얼굴을 내밀어 그 환한 빛 가운데 머무르고 싶다. 그러려면 깨어있어야 한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전진하며 굴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가보겠다고, 그렇게 외치려면 눈을 감았을 때에도 눈을 떴을 때에도 깨어있어야 한다. 작은 일을 하더라도 집안일을 할 때에도 때로는 느긋함 가운데 내 몸을 맡겨도 보지만 그곳에서 머무르지 말고 만족하지 말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소망하며 더 나은 나를 내가 기대해봐야 한다.


연말이다. 이번 한 해도 다 갔다.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든 게 막막하고 자신이 없었던 이번 해의 첫출발은 이렇게 아름답고도 따뜻한 연말로 막을 내려가고 있다. 빛 가운데 언제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 과연 이렇게 노력한다고 살아질지 확신이 없던 나였지만, 이제는 자신감이 넘치진 않아도 적어도 아무 자신이 없진 않다. 왜냐하면 무엇이든 간에 삶을 위해 내가 노력할 수 있는 무언가가 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일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절대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작은 것에서 가장 강한 힘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여럿 봤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다 살아낼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가장 약하다고 생각할 때 강한 빛이 비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그 빛에 의지하여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모든 세상을 비출 빛이 될 순 없다. 그러나 이미 비추고 있는 빛에 나를 내어준다면 그 빛은 나를 뚫고 내 주변을 넘어 내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밝히 밝혀줄 것이다.


어둠이 드리웠다고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자주 넘어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다시 일어설 것이다. 정말로 내가 행복해야 내 아이도 행복하다면, 나는 슬픔도 밀어두지 않으려 한다. 슬픔이 찾아오면 맞설 것이고, 고난이 찾아와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아픔이 나를 움켜쥐어도 나는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설 것이다. 그렇게 행복을 되찾으며 늘 곁에 둔다면, 내 곁에 있는 아이도 그 행복을 함께 누리고 기쁨을 취하는 삶의 지혜로운 방법들을 체득하리라 믿기에, 나는 강한 엄마가 되기 이전에 강한 자로 살아남고 싶다.


'무슨 생각이 그리 많니?' 맞다. 사실 단순하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면, 아프면 아픈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살아가면 편하다. 그런데 이미 깊은 슬픔을 한 번 맛봤거나 가장 잃고 싶지 않은 가장 밝은 빛을 봐버렸다면 평범한 일상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작은 보석이 너무나 귀하기에 삶을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더 가치 있는 삶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반짝이는 보석들을 잡을 수 있다면 지나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일을 기대하며 한 발 앞서 오늘을 살아가는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나의 작은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그날까지 진지하게 그러나 활력 있게 새로운 한 해를, 내일을, 미래를 시작해보려 한다. 내년 이맘때엔 지금보다 더 감사하는 성숙한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 빛은 늘 내리쬐고 있다. 강하게, 더 강하게, 눈이 부시도록 나를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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