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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 흘러 물결이 흘러 그렇게 바람이 되어

by 이지희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귀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더 넓어지고 커졌으면 좋겠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있어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나한테 좀 편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내가 좀 편해졌으면 좋겠다.


나는 언제가 편한가?

책을 읽을 때, 산책을 할 때,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 이럴 때 마음이 편안하다고 느낀다. 그러고 보니 다 혼자 있을 때이다. 나는 혼자가 편한 사람 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혼자여서 따라오는 고독함은 역시나 동반자로 여기고 함께 나아가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혼자여도 좋음은, 그 고독함 중에 찾아오는 빛이 이 세상을 다 채우고도 남는 기쁨으로 나의 평안을 완전한 만족으로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고독함은 내게 귀하게 좋은 것이다. 그리고 그 좋음을 깨달을 때 온 세상은 아름답게 비취어 너무나 소중하다 여겨지기에 나는 혼자이기에 만족한다 고백할 수 있다.


지난주엔 개강을 하였고, 나는 정말 오래간만에 수업을 듣고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 후, 내게 찾아오는 여러 가지 번민들은 내 몸을 앓게 했고 나는 마음의 몸살로 시름시름 앓다 며칠을 보냈고 그렇게 무거운 몸으로 오늘 아침 힘겹게 눈을 뜨고 일어났다. 그리고선 매일의 일상처럼 커튼을 열고 밖을 보았는데, 눈이 펑펑 내렸다.


3월 중순에 눈이라니.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뿌연함 사이로 쾌청한 하늘이 파랗게 물들어 있음을 보면서 내 마음의 먹구름도 잠시 걷히는듯해 기분이 좋았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 참 가깝고도 길게 느껴져서 모든 게 좋다 여겨졌다. 다시금 힘을 내고 또 다시금 걸어서 내 자리로 향했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하고 하루를 맞이하고 내일을 기대하며 허리를 곧게 세우고 또렷이 집중해 보았다.


1시간, 2시간, 3시간, 4시간...

묵묵히 집중하여 공부하다 보니 어지러웠던 고민들이 다 사라지고 소중한 나의 순간들이 있어 감사하고 이렇게 앉아서 공부할 수 있음에 오는 행복함에 또 감사함이 밀려온다. 많은 것을 이루려는 시도는 이제 하지 않는다. '성공'과 '실패'와 같은 목적들은 내 마음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나의 사명감만을 되뇌며 오늘 하루도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하게 나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할 뿐이니. 그러니 낙심하지도 주눅 들지도 말라고 내 어깨를 토닥여본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고, 나는 오늘의 태양 아래 그 따스함을 맞으며 움츠러진 내 마음을 서서히 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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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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