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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보이지 않는 것이

by 이지희

때때로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는 것 같다. '나'도 그렇다. 이것은 숨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다. 도피하고 싶다거나 사라지고 싶은 마음과는 다른, 존재는 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는 의미이다.


굳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거나 탐험하고 싶을 만큼 관심 있는 것이 있어서 '비밀망토'를 쓰고 가고 싶을 정도로 열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 본성 그대로의 자유를 가지고 그 자유함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주길 기도하며 내 발걸음이 향하는 대로 조용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의 것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불현듯 솟아오르는 감정과 심연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나는 분위기를 끌어당겨야 할 것인지 밀어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 쉬어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더욱이 감사하겠지만, 그렇지도 못한 나의 사정에 나는 지금 내 두발을 딛고 서있는 작은 나의 자리에 감사하면서 마음의 휴식을 취한다.


그렇게 몇 발짝 뒤로 물러서서 있는 듯 없는 듯하게 조용한 단정함을 갖추고 소중한 대상에 관하여 먼발치서 바라보는 시간도 갖는다. 가족, 친구, 또 내 주변의 가까운 관계에 관하여도,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그저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고백이 더욱 깊어지기에 나는 차분히 물러서 본다.


새로운 환경 앞에.

그리고 혼자 남겨진 내 앞에.

묵직한 무거움과 조금은 힘든 두려움은 나를 멈춰 서게 한다. 멈춰진 발앞에 나는 생각했다.

이대로 멈춰설 것인가?

아니면 거부감이 들어도 맞설 것인가?

그래, 오늘만. 다 변한다 해도 나를 잃지 않는다면 좋아 보이는 것들 아니 정말로 좋은 것들이 다 변질된다 해도 내 가슴속 변치 않는 순수함을 지켜낼 수 있다면 적어도 오늘은 오늘만큼은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나는 나에게 맞서 소망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때론 보이지 않아도 그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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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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