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가 찾아왔었다.
실컷 절망 가운데 허덕이다 나를 에워쌌던 나쁜 생각들은 또 그렇게 다 지나갔다.
그리고 다 지나간 후에야 내가 취할 수 있었던 행동은 옷을 털고 말끔하게 세수를 한 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단정한 모습을 갖춘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단정함을 갖춘 후에야 비로소 나는 단정한 내 모습이 가장 익숙하고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잔뜩 묻은 흙을 털어내고 바로 설 수 있었던 까닭은 단정하게 다시 나를 회복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서 그럴 수 있었던 것이었고, 그렇게 행동에 옮겼을 때 덤으로 내게 주어진 것은 단단함이었다.
조용한 말소리에 묻어있는 단정함과 단단함이 좋다.
차분한 발걸음에 조금씩 묻어나는 단정함과 단단함이 나는 좋다.
진실한 눈빛 속에 우러나오는 단정함과 단단함에 나는 빠져들고, 따뜻한 손길 위에 치우치지 아니하는 그 마음의 중심에서 느껴지는 단정함과 단단함이 나는 참 좋다.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모를 때에도 혼란스러워하지 않은 채 딱 한 걸음 내딛는 것에 집중하여 앞으로 한 발짝씩 걸어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내 수고를 알아주는 일에는 관심을 끈 지 오래고, 나의 마음을 오해해도 큰 상관을 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이든 아무리 하찮다 말해도 당신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라면, 그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내가 지켜야 할 나만의, 아니 어쩌면 나를 위한 사명이라 생각한다.
김광진의 편지라는 노래를 참 좋아한다.
때로는 정말 최선을 다하던 것을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정말 많이 사랑했던 그 무엇에 관하여 내가 멈춰 서야 할 때가 왔을 때,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그 마음을 멈출 수 있음은 이미 온 마음을 다해 꾹꾹 눌러 담은 발자국으로 이루어진 길이 있기에 멈춰 설 자리가 있는 것이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 마지막 한 발자국이 그 길의 완성이기에.
그렇기에 이번에도 내가 멈춰야 할 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내가 가는 나의 길을 온마음 다해 사랑하려 한다.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나는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힘겹게 올라오는 꾹꾹 눌러 담아 산 위로 떠오르는 달이 때론 더 좋다. 동그랗게 떠있는 올곧음과 꽉 채워진 단단함이 어우러져 지극히도 아름답게 느껴지기에 내 마음은 어느새 뭉클해진다. 나의 길도 저 환한 달빛이 되어 이 밤을 밝히는 길이 되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단정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려 한다.
단단해지길. 내 마음이 이렇게 무르익어 또 한 번 단단해지길.
오늘도 그렇게 토닥이며 밝은 달빛에 내 작은 빛을 포개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