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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닿는 곳에

by 이지희

(생각들은, 모두 다 사라지기 마련이다.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되는 것은 내 마음이 닿은 곳들.


조건 없이 주었던 마음이 크게 다쳤던 그 상처 속에서 나는 철저히 넘어졌었지만,

나는, 머무르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또 나를 잃지도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도 않은 채,

뚜벅뚜벅 걸어오기를 택했는데.


놀란 가슴이 긴 세월에도 진정치 않은 건지 자꾸 나를 눈물짓게 한다.


강했던 마음이 작은 소리에도 우르르 벽이 허물어져 나는 약한 마음에 나를 자책하게 되어 버렸고, 마음속 행복함이 활짝 퍼져도 날아든 작은 돌멩이에 맑았던 내 마음속 날씨는 어느새 소나기가 내려 온몸이 젖어버리고 만다. 기운이 빠져 머리끝까지 덮어버린 이불속에선 숨죽여도 들리는 내 거친 숨소리에 부끄러움이 몰려와 눈물이 흐른다. 우울한 건 싫어서 자리를 박차고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책상에 앉아 일기장에 감사함으로 가득 채우며 내 마음이 다른 곳이 아닌 평안한 나에게 닿을 때까지 나는 울면서도 멈추기를 거부한다.


초연한 태도가 나도 모르는 사이 갖추어져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마음이 닿는 곳마다 함께함을 좋아했던 나의 모습이 어리석게 보이기 시작한 순간, 나는 세상이 무서워진 것이 아니라 큰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작은 세상에선 괜찮겠지 여겼던 또 한 번의 기대는 아무리 작은 세상도 그 속성은 같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에서야 나는 어떠한 세상이든 초연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둠이 짙어서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두려워 서있다가 나는 내 손에 든 초를 켜면 내 눈에 가장 밝히 빛나는 빛이 생긴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고,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 내 머리를 쬐어 내린대도 나는 내 손에 든 초에 불 붙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초를 들고 있는 손 위에 자꾸 촛농이 떨어져 아프다.


잠시, 초를 끄고 어둠 속에서 가만히 견디어 볼지. 그렇게 촛농이 다 굳어 떨어질 때까지 잠시 멈추어 볼지. 그럴지, 생각하는 밤이다. 지금 내 마음이 닿는 곳은 가장 낮은 밑바닥뿐이다. 아무도 없는 그래서 알지 못하는.


나는 아름다움을 안다. 서른셋, 적다면 적은 나이지만 수없는 날동안 나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사람도, 마음도, 미소도, 하늘도, 감정도, 사랑도, 지나온 나의 모습 속에서도 나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작은 참새의 노랫소리도 상쾌한 아침엔 너무도 아름다운 소리로 울려 퍼져 내게 힘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나의 이 작은 날갯짓에도 살아있는 생명력이 전달되는 삶이 되기를. 그렇게 작디 작은 소망을 품고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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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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