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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겨울

by 이지희 Mar 04. 2025

폭풍우가 내린 후 온 비를 맞으며 꿋꿋하게 끝까지 버티고 눈을 떠보니 내가 앉을 수 있는 오래된 나의 의자가 덩그러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없어진 줄 알았던 나의 자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오랜만에 앉은 나의 자리에서 나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나의 온몸을 조용히 적시고 있음을 내 눈엔 굵은 눈물이 맺히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이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내 자리를 찾아온 듯 느껴졌다. 그리하여 지금껏 그 자리를 지켜준 빛바랜 의자를 바라보니 나는 지나간 세월의 모든 것들이 감사하다 느껴졌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어쩔 수 없이 떠나보냈던 그리고 떠나와야 했던 모든 상황들 앞에 끝끝내 나를 잃지 않고 내 마음을 지켰음에 그저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견하길 바라왔던 진실한 사람들이 이미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각기 힘든 시간들을 지나오고 그럼에도 고유한 자신의 모습들을 잃지 않고 세월에 덧대어져 다듬어진 더 나은 모습으로 여전히 전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조용히 그렇게 반짝이며 살아가는 진실한 사람들이 보이기에 나는 외로웠던 시간들을 넉넉함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어 미소를 잃지 않고 내 길을 계속 걸어가고자 마음이 단단해졌다.


새롭게 시작하는 나의 일상에 모두가 발맞춰 함께 힘을 모아 앞으로 전진해야 할 이 중요한 시기 속에서 나의 어렵게 시작된 이 새로운 출발의 때를 힘들게 하는 상황들이 갑자기 몰려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나의 고유한 자리로 돌아가려 하니 주변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나를 뒤흔들려할 때마다 나는 다가올 나의 작은 앞날을 위해 인내하는 시간을 겪어야만 했다. 이 소용돌이가 나를 쳐야만 자기 갈길을 갈 수 있다면 기꺼이 나를 헝클이고 가라고 나를 내주었고 나는 그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 힘을 내어 견디던 요즘이었다. 그리고 오늘 오전 내가 사는 지역엔 거세게 흩날리는 눈발로 온하늘이 가득 차 한참을 그렇게 내렸다.


3월의 눈이란... 겨울의 마지막 발악인지 봄의 단단한 기다림인지 계속해서 그 세찬 눈발을 바라보며 요즘에 내가 처한 상황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눈이 그치길 바라면서 끝없이 쏟아 내리는 싸라기눈에 기온도 떨어져 추움에도 나는 이상하게 춥다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만 지나가면 따뜻한 날씨와 화창한 봄이 찾아올 테니 나는 이 눈과 세찬 바람을 그저 몸으로는 느꼈지만 마음만큼은 움츠러들지가 않았다. 그렇게 흘러 흘러 내려가라는 묵직한 마음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음을 알았고 나는 그다음을 기대할 수 있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날이 갰다. 파란 하늘과 내가 좋아하는 구름이 그리고 여러 까치들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봄이, 반가운 봄이 왔다. 그러면서 문득 나도 누군가에게 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고 화창하여 눈부신 날 속에서 함께 걸어주는 친구처럼 말이다. 나는 고유한 것들이 좋다. 요즘엔 조금만 옆을 보면 이 세상엔 꾸며서 아름답게 펼쳐진 것들이 정말 많아 그 화려함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나는 요즘 들어 더더욱 고유한 것들, 날 것들의 아름다움이 좋아진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것들이 너무 귀하게 보이고 그냥 그 자체로 좋다. 나도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 세월과 여러 가지 이념들에 내가 지키고 싶은 소중한 가치들이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는 너무나 단순하지만 그저 '나'를 지키고 싶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2025년 봄을 기대해 본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선율이 다시 나와 함께 흐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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