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을 들었다.
사람이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상을 떠났고 가족을 떠났고 친구를 떠났고 그리고 내 곁을 떠나는, 이 이별들은 우리의 사랑에 빗대어 갈라지기에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따갑도록 이 슬픈 마음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한동안 우울한 우물 속에 깊이 빠져있다가 햇살이 너무 밝다는 문득 떠오른 생각의 눈부심에 다시 눈을 뜨고 세상으로 나왔다.
무엇이 됐든 반복할수록 편해지기 마련인데 '헤어짐'이라는 것은 왜 이리도 늘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새롭게 아리게 하는 것인지.
가끔가다 찾아오는 슬픔에 나의 일상을 지키는 것은 곧 잘 취약함을 드러낸다.
'이럴 거면 무엇이 되었든 정을 주지 말아야지, 깊이 사랑하지 말아야지, 아니 그냥 생산력 있게 사는데 몰두하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이 고통을 지나치기 위해 끝을 외치며 모든 것을 덮고 완고히 지나가지만.
끝은 사실 끝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이라는 긴 줄 타래 위에서 또 하나의 자리매김을 하는 매듭이기에.
넘어갈 수 없게 돌돌 말아 여러 번 꽉 묶여 각인되어 있는 그 매듭을 지나 나는 홀로 또 나아가기에.
사랑의 물결은 나를 또 한 번 찾아온다.
사랑을 할 때 혹은 사랑을 알게 하실 때 모든 것은 정지되는 듯하다.
그것이 사랑의 능력인지 주권자의 힘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그 줄다리기 사이에서 그 결이 같은 것인지에 관하여 고민을 하다 결국 사랑하는 것을 택하는 나를 바라보다, 내 눈을 돌려 사랑하는 이의 아픔은 왜 나의 아픔이 되는 것인지 고민을 하고 결국 그 질문은 왜 나는 사랑을 하고 왜 너를 사랑했고 왜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뻗쳐진 채로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 종착지는 나를 포기하고 사랑을 위하기 시작하는 것이 되고, 그렇게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을 때 비로소 나는 '사랑'의 손을 잡게 되었다.
모두가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닌 듯싶다.
특정 대상을 위하여 태어난 것처럼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사랑의 감정의 위대함을 아는 것이지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나진 않는다고 믿는다.
내가 태어났고, 내가 사랑하는 것은 내가 '사랑'을 하는 것이지 '사랑'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 혹은 사랑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랑하는 것에 몰두하기보다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 마음을 붙들어 놓기로 했다.
내가 살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랑은 해야 변화가 있고, 더 나아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모양이건 간에.
사랑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건,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을 하지 않는다는 건, 고독의 문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라고쯤 여겨둔다.
그러니, 나는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을 꼭 해야 하나?'라는 물음을 앞세워 사랑하는 것을 피하고 피하기 일쑤였지만 나는 그냥 담대해지기로 했다.
나의 존재보다 더 큰 사랑으로 신이 내 등 뒤에서 나를 붙들고 계시기에 사랑을 함에 나는 위기가 온다 해도, 모든 인생의 순간들을 이김에 있어 사랑은 늘 넉넉했고 그렇게 이길 것이기에, 나는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싶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와의 싸움이고 나는 그 싸움 앞에 지지 않고 싶다.
고로, 지금은, 늘 지금은 사랑을 할 때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