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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말

강원도 영월, 도담삼봉 앞에서

by 숲속의조르바


얼마 전 충청북도 단양을 여행했다. 단종이 유배되고 죽은 곳으로 유명한 단양을 여행하기 전에 단종에 대해 짧은 시간이나마 공부를 했었는데 그전에는 그저 어린 나이에 죽은, 존재감 없는 왕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단종은 세상 그 누구보다 억울할 수밖에 없었고 안타까운 존재였다.


단종은 왕비에서 태어난 적통 왕자에, 큰아들인 장자, 왕세손과 왕세자 책봉까지 문제없이 받은 모든 과정이 완벽한 조선의 27명 왕 중 가장 정통성을 가진 군주였다. 단종의 아버지 문종이 불과 즉위 2년 만에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자 단종은 12살에 왕이 되었다. 그때 단종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죽고 할아버지인 세종대왕과 할머니도 죽고 없어 자기편 하나 없는 혈혈단신 상태였다. “누가 왕이 될 상인가?” 혹은 배우 이정재로 다들 알고 있는 탐욕스러운 삼촌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지금도 오지에 가까운 첩첩산중 단양으로 왕비와도 떨어져 혼자 유배를 오게 된다. 강가의 소나무를 유일한 친구 삼아 버티다가 처절한 외로움 속에 그리고 내막도 알 수 없이 열일곱의 나이로 죽는다.


근 10여 년간 하는 일도 지지부진하고 욕심만큼 되지도 않고 5천 원짜리도 잘 맞지 않는 내 로또와 달리 매주 수십 명씩 나오는 당첨자들을 보며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단종의 이야기를 알고는 억울해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억울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감히 어디를, 단종도 있는데.


단양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영국 락밴드 콜드플레이의 히트곡 Viva La Vida가 흘러나왔다.


한때 세상을 지배했던 왕이 모든 권력을 잃고 나서는 자신이 지배하던 땅의 청소부가 되어 거리를 청소하며 옛 영화를 반추하는 내용이다. 힘을 잃어버린 동양과 서양의 비참한 두 왕이 교차한다.



Viva La Vida라는 표현은 [인생이여 만세]로 해석되는데 멕시코의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가 유작에서 처음으로 썼다한다. 그녀의 삶은 지독한 고통의 연속이었는데 저런 표현을 쓴 것 자체가 역설적인 표현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치열히 싸운 삶에 대한 스스로의 찬사였을까.


단종의 마지막 말은, 심정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분명 [인생이여 만세]가 아닌 [죽음이여 만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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