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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때가 좋았을까

쿠바, 하바나의 어느 골목에서

by 숲속의조르바



4년 정도 다닌 첫 번째 직장을 본인의 능력과는 아무 상관없이 회사 자체의 큰 문제로 그만두게 된 한참 어린 동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일단 실업급여를 받으며 잠시 쉬기로 결정하고 백수처럼 무료한 날들을 보내고 있자니 혼자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한 동시 우울감과 무력감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첫 직장이니 당연히 누구보다 열심히 했을 것이고 탄탄했던 회사라 상상도 못 했을 실직일 테니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어쩌면 지금이 그의 삶에 있어서 벨에포크, 아름다운 시절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멈추고 사회가 번성했던 19세기말부터 1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기간을 유럽에서는 벨에포크,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불렀다 한다.


“요즘처럼 온전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지 생각해 봐. 초등학교 시절까지 되돌려 생각해 봐도 없을 걸? 다시 취업을 하게 되면,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밤새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지겨우리만치 누린 게으름의 요즘 시간들이 그리울 거야."


"내 생각에 지금이 너에게는 벨에포크 같은데? 그리고 너의 벨에포크는 예상보다 아주 빨리 끝날 것 같고. 곧 다시 전쟁터야. 어때 벌써 아쉽지?”


그의 취업을 장담하며 지금의 휴식기를 즐기라는 말에 후배는 겉으로는 수긍을 하는 듯했지만 아마 속으로는 그냥 하는 위로쯤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 ) 했어도 그때가 좋았어 “


가난했어도, 돈이 없어도, 힘들었어도, 미련했어도, 버거웠어도 와 같은 갖가지 지친 단어들이 들어갈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굳이 현실의 어려움이나 불안감속에서 과거의 긍정적인 기억을 이상화하여 위안을 얻는다고 분석한다. 혹은 과거의 향수를 통해 현재의 고통을 회피하거나 안정감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방어기제로 그때가 좋았다고 할 수도 있다. 심리학적 분석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있는 그대로 좋았던 그때를 단순히 기억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강아지가 꼬리치고 아이가 웃는 것처럼 좋은 것은 그대로 좋은 것일 뿐이다.


어쨌든, 모든 벨에포크는 더 힘든 현재가 왔을 때에야 비로소 깨닫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금의 시간이 어떻든 나중에 돌이켜서는 벨에포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힘들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장난처럼 보내주던 인터넷에 떠돌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글귀가 있다.


오늘 힘들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내일도 어차피 힘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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