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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의 본질

제주, LP 음악을 듣다가

by 숲속의조르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레코드판처럼 생긴 경쟁의 트랙에 넣어졌다.


안타깝게도, 당연하게도 그 출발점은 제각각 다르다.


중심에서 가까운 자는 가벼이, 먼 자는 숨 가쁘게 몇 배를 뛰어야 겨우 [동일한 한 바퀴]를 메울 수 있다.


편안한 안쪽으로 파고들 수 있는 기회는 안쪽으로 갈수록 더 수월하다. 그런 불공정에서 출발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등수가 매겨지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한우의 등급보다 세밀하게 등급이 나뉘어 그에 걸맞은 대학으로 차등 배분되었다. 그 후론 그에 걸맞은 연봉을 주는 회사로 재배정된다. 그 배치는 거주 공간의 크기로도 이어진다. 승자는 안전하고 넓은 서식지에, 패자는 후미지고 좁은 서식지에 자리 잡아야 한다.


이런 불공정을 한때 억울해하기도 하고 나를 트랙에 세운 존재를 원망스러워한 적도 있었다.


쳇바퀴 같은 힘겨움의 반복에 절망 비슷한 감정을 느껴 본 적도 있다.


그러다가 문득 왜 뛰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인생이라는 레코드판의 본질은 즐겁고 흥겹고 때론 슬프기도 한 것들이 버무려 섞여있는 [음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심에서 멀든 가깝든, 달리기의 본질은 즐거운 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때그때 위치에 맞는 속도로 뛰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느리면 늘어져 어눌해지고 빠르면 경박스러워진다.


다행인 것은 한번 뛰기 시작하면 레코드판의 바늘은 부드럽게 점점 안쪽으로 타고 흐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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