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닛 조르바의 위스키들
예전에 Pub 플래닛 조르바를 운영할 때, 수십 수백 가지 위스키의 맛이 왜 다 다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했다. 그때 나는 이런 비유를 해서 질문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적이 있다.
열 명의 사람에게 배추 몇 포기, 소금, 고춧가루, 마늘, 대파, 쪽파, 액젓, 새우젓, 생강 등과 없는 맛도 살린다는 조미료까지 공평히 나누어 주고 똑같이 김치를 담그게 해 본다. 더할 것, 덜할 것 없이 똑같은 재료인데, 누구의 김치는 맛깔스럽고 대개의 김치는 그럭저럭 김치 맛이 나고, 혹자의 것들은 고춧가루에 버무려진, 그저 짜거나 싱거운 풀무침에 가까울 수 있다.
손맛이라는 미지수의 요소가 있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배추를 얼마나 적당한 양의 소금과 시간에 절여 내고, 양념을 적절히 배합하는 숨은 비결이 결과를 가늠 짓는 것일 것이다. 김치가 맛있기로 유명한 전라도의 어느 마을에 가서 집집마다 똑같은 조건과 재료를 주더라도 다 제각각 미묘하게 맛이 다르면서 맛있는 김치를 만들 것이다. 기막히게 맛있더라도 맛이 똑같은 집은 한 집도 없을 것이다. 위스키도 같은 맥락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에게 주어진 자음과 모음은 같다. 같은 숫자의 모음과 자음, 그것들로 어우러진 단어와 문장을 짓는데 누구는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글을 쓰고 나는 엉성하고 싱겁고 쓴 맛과 짠맛이 들쭉날쭉한 겉절이만을 담그고 만다. 아무 맛도 못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겉절이는 김장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깊은 맛을 내지 못하고 그냥 쉬어 꼬부라지고 만다. 결국 망한 김치에 설탕만 더 뿌려대다가 먹지 못할 정도로까지 더 망치고 만다.
우리의 일상, 인생도 마친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하루 스물네 시간, 일 년 삼백육십오일의 재료를 나는 어떻게 쓰면서 살아왔는지 생각해 본다. 맛집은커녕, 끼니를 때우기도 버거웠던 듯하다.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하루를 버티며 때운 것 같다. 심지어 요즘은 그마저도 버겁다.
안타깝게도 일단 쓰인 재료는 다시 쓸 수가 없다. 다행히도 아침이면 24시간의 공평한 재료가 모두에게 다시 주어진다. 물론 그 기회는 무한정 주어지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떠 봐야 한다.
쓸 재료보다는 부질없이 써버린 재료가 많은 지금이다.
이제껏 허투루 낭비하고 살았지만 이제라도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든다. 맛집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재료가 아깝다는 말은 듣지 않도록 잘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