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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승자는 없다

북아일랜드 다크헤지스의 숲터널에서

by 숲속의조르바 Feb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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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살 때, 곶자왈을 종종 산책하곤 했다.

제주 말로 ‘곶’은 숲, 나무를 뜻하고, ‘자왈’은 덤불을 뜻한다.


습한 제주의 숲은 곶과 자왈의 치열한 승부처다.

숲에 키가 큰 나무들이 많아지면 그늘이 많아져서 그늘을 좋아하는 칡이나 등나무 같은 덩굴 식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 그러면 덩굴들은 나무들을 감으며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덩굴 식물에 휘감겨 점령된 나무는 결국 살지 못하고 죽게 된다. 덩굴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늘을 만들어주고 기댈 곳을 내어 주던 나무들이 죽어 쓰러지게 되면 강한 볕에 덩굴의 세상도 소멸하게 된다. 덩굴이 사라진 숲은 다시 나무들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게 된다. 이 순환이 반복되는 곳이 곶자왈이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살아가다 보면 나무의 시기도, 덩굴의 시기도 겪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순환이다.


칭칭 묶여 꼼짝할 수 없는 음습한 덩굴의 시기라도 다시 볕은 내리쬐어 숲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다시 덩굴의 시기가 엄습할 것이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다는 마음도 든다.


다만, 내 스스로가 덩굴 자체가 되지는 않기를 바라본다.


< 제주, 환상숲, 2014 >< 제주, 환상숲,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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