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 산맥과 돌로미티의 봉우리쯤에서
친구와 우리도 이제는 어느덧 인생의 내리막쯤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예전에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할 때 피레네 산맥을 넘던 것이 생각났다. 자전거로 스페인에서 안도라공국을 지나 프랑스로 가려면 2408미터의 고갯마루 Pasa de la casa를 지나야 한다. 한라산(1947M)보다 한참 높은 높이다.
당시 꼬박 9시간을 넘게 자전거로 오르막길을 타고 올라야 했다. 결국 고갯마루의 정상에 섰다. 5월 말쯤이었는데도 눈이 제법 남아있었다. 좀 우스꽝스러운 포즈이지만 꽤나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남긴 사진이다.
아침 일찍부터 오후까지 온종일 오른 오르막을 내려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Ax-les-Thermes라는 피레네 산맥 아래 작은 프랑스 마을의 숙소까지는 40킬로미터쯤 되었는데 3-40여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던 듯하다.
내리막은 달콤하고 상쾌했다. 단내가 나던 입으로 환호성인지 괴성인지 모를 소리를 눈치 볼 것 없이 내지르면서 무서운 속도로 내려갔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은 후에도 이탈리아의 2천 미터급 돌로미티 고개(표지)를 넘어 오스트리아도 가고, 알프스의 가장 높은 곳인 샤모니몽블랑을 가기 위해 2천 미터대 고개들을 여러 번 넘었었다. 이런 높은 산들 외에도 자잘한 구릉들과 오르막과 내리막이 석 달의 여행기간, 약 5천 킬로미터의 길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 오르막만큼 힘든 것은 없고 내리막만큼 달콤한 것도 없다.
수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면서 든 생각이 있었다.
휴식으로 주어지는 내리막은 딱 올라간 만큼만이었다. 딱 그만큼의 쉼이 주어졌다. 높이 올랐으면 그만큼 길게, 높이 오르지 않았으면 내리막도 짧았다.
내리막이라는 단어의 어감은 꽤 쓸쓸하고 초라하다. 특히 인생이나 어떤 굴곡을 말할 때 더욱 그렇다.
내리막은 올라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오르지 않았으면 응당 그 보상이 있을 수 없다. 고되게 올랐으니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이는 바람을 누리며 땀을 식히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나이 듦이라든지, 사회적 지위나 입지, 경제적 상황이 내리막길처럼 느껴진다는 말은 곧, 높이가 어떻든 올라왔다는 말일 테니 굳이 초라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만큼 편안한 노후가 없는 것 또한 내가 평안한 길만, 적당한 나태의 볕만 좇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리막을 대하는 나만의 생각, 요령쯤이다.
아직 내리막의 단계에 이르지 않은, 고갯마루를 오르는 사람에게 나만의 오르막을 오르는 요령이 하나 알려준다.
멀리 정상을 보지 말고 고개를 처박은 채 바퀴 바로 앞 땅만, 발끝만 보는 것이다. 산 정상을 오르는데 계속 정상을 보면서 걸으면 기껏 몇 시간을 가도 정상은 까마득하고 제자리걸음을 걷는 듯하여 기운이 빠진다. 더 중요한 것은, 이쯤이면 한참 가까워졌겠거니 하고 중간에 고개를 들지 않는 것이다.
그저 땅바닥만 보고 타다 보면 결국 어느 순간 오르막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 정점에 이른 것이다.
알프스를 넘을 때도 마찬가지였었다. 그냥 꾸역꾸역 하다 보니 까마득했던 바늘의 끝에 닿은 것이다.
종종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다. 아득히 높은 곳을 보며 지레 지치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무언가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위치에 닿을 수 있다고, 당신도 그렇게 해보라는 동기부여일 게다.
내리막이 더 달콤하려면, 일단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은 진리인 듯하다.
#텐트밖은유럽 #돌로미티 #돌로미티는내가먼저 #지금가면한국인천지일듯 #10월에또가는건자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