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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킴 Oct 30. 2020

14. 폭력과 고통 없는 황홀한 출산?

자연주의 출산에 도전하다

임신 테스트기에 뜬 두 줄로 임신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첫 검진으로 친구 부부가 추천해준 산부인과로 갔다.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친구가 그 병원에서 경험한 출산 이야기를 자세히 나누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친구 부부는 '자연주의 출산 보고서'라는 SBS 스페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자연주의 출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집에서 꽤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그곳은 국내 최초로 자연주의 출산을 교육하는 기관인 젠틀버스가 출산 교육을 지원하고 있었다. 젠틀버스 대표부터 담당 원장님까지 태아와 산모를 배려하는 출산을 위해 적극 도와주었다고 했다. 초산에 4kg대의 작지 않은 아기를 인위적인 의료적 개입(무통, 촉진제, 관장, 제모, 회음부 절개) 없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출산을 축하하기 위해 병원부설 조리원을 방문했을 때, 친구는 회복이 빨라 보였고 아기도 아주 건강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임신하게 되면 여기로 와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첫 초음파 검진으로 임신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젠틀버스 출산 교육 담당자와 상담을 했다. Gentle(부드러운) Birth(출산) 이란 의료진 중심이 아닌 엄마와 아기를 배려하는 출산이라고 했다. 내가 벌써 엄마가 되었다니, 날 찾아와 준 아기 천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 여태 느껴보지 못한 일종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나는 출산에 대해 더 자세히 공부하고 싶어 졌다. 


나와 남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HypnoBirthing (국내 번역본: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책을 읽은 것이었다. Hypno:최면, Birthing:출산 이 결합된 히프노버딩이란 최면 치료 기법을 활용한 자연 출산 방식이다. 여기에서의 최면이란 산모와 남편이 여러 가지 이완 기술을 익혀 출산 시 전통의 두려움과 고통 대신 기쁨과 평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을 말한다. 자가 최면 상태에서 산모는 자궁이 수축되는 것을 고통이 아닌 아기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 히프노버딩의 기본 원리이다. 따라서 약물과 의료의 도움이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산모는 자연스러운 본능을 이용하여 편안한 상태에서 출산을 할 수 있다. 히프노버딩에서 출산의 전 과정은 의사가 아닌 엄마와 아기에 의해 결정되고, 엄마와 아기의 소통과 믿음을 기반으로 몸의 속도에 맞춰 진행된다. 이 책에서는 이론뿐만 아니라 히프노버딩의 네 가지 기본적인 테크닉으로서 수면 호흡, 느린 호흡, 출산 호흡과 같은 호흡의 기술, 여러 가지 이완의 기술과 시각화 기술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출산 당시에 산모와 가족에게 꼭 필요한 사항을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우리는 이 책을 참고하여 구체적인 출산 계획서도 작성할 수 있었다.   


'정말 고통 없는 출산이 가능할까?' 책을 다 읽고 너무나 궁금했다. 나는 페이스북에서 부산 거주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둘라이자 히프노버딩 프렉티셔너인 아델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아델은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서 두 딸을 낳고 살고 있는 결혼 이민자였다. 그녀의 직업은 Doula(둘라)였다. 둘라는 출산 조력자로 임신부터 산후 케어까지 출산의 전 과정 동안 엄마와 아기가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비의료인이다. 아델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부부나 우리처럼 한쪽이 외국인인 국제결혼한 부부들에게 한국의 실정에 맞는 산전 교육을 영어로 제공하고 출산 현장에서 산모와 가족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히프노버딩 전문가 교육을 받은 공식 프렉티셔너 이기도 했다. 


나는 다짜고짜 물었다. "정말 히프노버딩으로 출산을 하면 고통이 안 느껴지나요?" 첫째와 둘째 딸을 모두 조산원에서 자연주의 출산으로, 그리고 히프노버딩 출산법으로 낳은 그녀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전~혀 안 느껴졌어요. 자궁 문이 다 열렸을 때 아기가 나오기 위한 Pressure(압박)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때도 억지로 힘을 주지 않고 호흡으로 아기가 나오도록 도와줬지요." 출산 시 진통이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사람을 처음으로(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눈 앞에서 만난 순간이었다. '바로 이거야!' 나는 확신했다. 나도 고통 없고 황홀한 출산을 하겠노라고. 나는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세 번째 정기 검진을 갔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병원에서 더 이상 분만도 젠틀버스 교육도 하지 않고 여성의원으로서 외래진료만 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친구 부부가 추천해 준 원장님도 다른 곳으로 가셨다고 했다.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인데, 너무 황당했다. 


하지만 병원은 친절하게도 부산에서 자연주의 출산을 지원하고 젠틀버스 교육도 있는 유일한 병원인 좋은문화병원에 전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집에서는 조금 더 멀어졌지만 옮긴 병원에서 젠틀버스의 체계적인 출산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총 9강에 걸친 산전 교육을 수료했다. 남편은 한국말이 서툴러 수업을 50%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표님이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하셔서 수업 후 남편의 질문에 개인적으로 답해주기도 하며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첫 아이를 맞이해야 하는 남편에게 신뢰를 주는 유일한 지원자의 노릇도 했다. 


프로그램을 이수하며 이전에는 몰랐던 임신과 출산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중 인상 깊게 배운 것 중 하나는 분만과 출산의 차이였다. 분만(delivery)은 산모의 몸에서 아기를 나눈다는, 즉 의사가 안전하게 산모의 몸에서 아기를 빼낸다는 의미가 강하다. 오늘날의 병원 출산 환경에는 분만의 주체가 의사가 된다. 반면 출산(birth)은 엄마의 출산 본능과 새 생명의 힘을 믿고, 아기의 때가 되어 스스로 나오기까지 충분히 기다려주는 자연스러운 만남을 말한다. 자연주의 출산이란 단순히 의료적 개입을 제외하고 무통 없이 생으로(?) 아기를 낳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부부는 임신 기간 내내 주체적으로 공부했고 우리가 원하는 출산을 계획했다. 


출산이 다가왔을 무렵에는 나의 담당의이기도 했던 자연주의 출산센터 대표 과장님, 대표 조산사 선생님, 실제로 자연주의 출산을 경험한 선배 엄마들까지 모두 직접 만나서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었고, 3~4시간에 달하는 마지막 출산 이행 교육까지 마쳤다. 모든 것이 준비된 느낌이었다. 


임신 37주부터는 언제든 출산을 해도 좋다기에 출산 가방을 싸놓고 본격적으로 짐볼 운동과 등산까지 시작했다. 만삭의 몸으로 주말마다 남편을 이끌고 왕복 2시간 이내의 가벼운 산행을 하기 위해 달맞이 고개, 이기대, 무장애 숲길 등을 찾았다. 나와 아기 모두 건강했고 모든 검사 결과도 정상이었고 아기의 포지션까지 완벽히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남편과 나의 조합이 어떻게 나올지 너무 궁금해서 하루빨리 아기를 만나고 싶었고, 걱정보다는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서는 '나 같이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한 사람이 못하면 누가 하겠어?'라는 자신감마저 들었다. 


처음에는 아기를 위해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했지만, 임신 기간 내내 임산부 운동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임산부 홈트 수업을 진행하면서 나의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겠다는 오만함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곧 나는 오만함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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