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인가, 걱정인가?
임신 초기에는 보통 조심조심하라고 누워만 있으라고 한다. 하지만 배가 불러오기 전에는 오히려 몸이 가벼워서 컨디션이 허락하는 한 어떤 운동이든지 다 할 수 있다. 나는 첫째 임신을 확인했을 때 마라톤 이외에도 개인 운동으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봄학기 파워 필라테스 수업을 수강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신 사실 확인 후에도 멈추지 않고 6월 말 학기가 끝날 때까지 쭉 수강했다.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수업이 아니었기에 각종 복근 운동과 바닥에 엎드리는 동작도 있었지만 배가 나오기 전에는 상관없다. 다만 강사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컨디션에 따라 알아서 페이스 조절을 하겠다고 양해를 구한 후 내 체력의 80% 이상으로는 푸시하지 않았다.
아침 8시에 하는 외국인 그룹 피트니스 수업 출강도 계속했다. 그 이른 시간에 꾸준히 수업을 나오는 회원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가족과 함께 온 여성들이었다. 국적은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 다양했다. 그들은 자녀들을 국제학교 스쿨버스에 태워 보내고 곧장 함께 운동하고 싶어서 나에게 이른 아침 수업을 신설해달라고 요청할 만큼 열정적이고 부지런했다. 임신 소식을 온 천지에 알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직장에는 되도록 늦게 알리는 편이 좋다고 해서 꾹 참고 있다가 피티 회원인 아니타에게 알린 김에 이 그룹에게도 알리기로 했다.
"I have a news to share. I'm... pregnant!!!" 저 나눌 소식이 있어요. 임신했어요!!!
반응은 아주 드라마틱했다. 대부분은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I'm so happy for you"를 연발하고 안아주고 볼에 뽀뽀해주고 감동의 물결이 넘실넘실했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함께 열심히 운동했다. 노르웨이 맘 트리네는 자기도 쌍둥이 임신 중 헬스장에서 꾸준히 운동을 했다고 전했다. 트레이너가 임신을 했다고 해서 그들에게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걱정해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참 든든했다. 덕분에 임신하게 되면 내 커리어에 지장이 생길 거란 걱정은 온데간데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지지받고 축복받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에는 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그룹 수업을 하는 커뮤니티 센터에 출강했다. 하지만 배가 나오기 전까지 아파트 회원들에게는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부분 평균 연령대가 50대인 한국 여성들이었는데 분명 너무 걱정들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임신 15주 차에 부산일보에서 당시 막 유행하기 시작한 홈트레이닝에 대한 취재 의뢰가 들어왔다. 임신 중이었지만 열심히 사진과 영상 촬영을 포함한 인터뷰 취재에 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신문기사를 본 회원님이 이미 다 소문을 내놓으셨는지 어느 날 수업하러 들어가자마자 질문이 쇄도했다.
"어머~ 쌤, 신문에서 봤어요. 임신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임신 한 몸으로 이렇게 운동해도 돼요? 임신 초기 때는 조심해야 한다던데~"
"언제 까지 하고 그만두시는 거예요? 출산 후 복귀하실 거예요?"
"배가 불러오면 어떻게 수업해요? 쌤 대신 다른 강사 구해주실 건가요?"
내가 하는 수업의 퀄리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 임신 소식을 알고 나니 내가 뛸 때마다 플랭크를 할 때마다 우려의 눈빛을 보내왔다. 나와 아기의 안위를 걱정해주시는 것이 고맙긴 했지만 나는 불편했다. 축복을 받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임신 때문에 능력을 100% 펼칠 수 없고, 곧 그만두어야 하는 존재로 전락한 기분이었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임신 소식을 전하는 것을 직장에 만큼은 최대한 미루라고 하나보다.
그렇게 신문에 기사가 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회원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게 되었고 예상했던 부정적 반응을 경험했지만 나는 굴하지 않기로 했다. 임신을 했다고 해서 커리어에 지장을 주라는 법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보란 듯이 애 낳는 전날까지 모든 수업을 진행하고, 출산 후에도 건강하게 복귀하리라!' 나는 오기 반 각오 반으로 결심했다. 나는 바람대로 막달까지 모든 수업을 지속했고, 출산한 지 백일만에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