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_에피소드 6
릴리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학년 초마다 똑같은 고민을 해왔다. 고민이라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사소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준 설문지를 읽을 때마다 매번 난감했다. 가정환경과 장래희망을 묻는 설문지에 항상 따라오는 질문, 바로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직업은 뭐냐는 것이다. 대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가 바라는 직업과 아이가 바라는 것이 다를 경우에 학교에서 나서서 중재라도 해주려는 건가? 이런 추측도 해봤지만, 그럴 리가. 솔직하게 내 마음대로 써도 된다면 그 빈칸에 ‘재벌!’이라 쓰고 싶지만 그러면 선생님께 장난하느냐고 혼날 것 같아 “아이가 원하는 일을 저도 원합니다”라고 매번 소심하고 진부한 멘트를 써서 보냈다.
릴리가 원하는 일은 뭘까? 릴리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다양한 변천사를 거쳤다. 처음에는 나로서는 굉장히 실망스럽고 무섭게도 작가였다. 엄마가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라서일까? 일찍부터 독서에 재미를 붙인 릴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평소엔 쿨한 척하던 나는 본심을 속일 수 없어 일단 그 꿈에 제동을 걸었다.
“작가는 좋지만 작가만 했다간 완전 굶어 죽어. 꼭 작가가 되고 싶다면 글은 글대로 쓰고 생활비를 벌 수 있는 다른 직업을 가져.”
이것은 책동네에서 일하면서 만난 무수한 작가들을 통해 알게 된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번역가들은 자조적으로 자신의 작업을 구슬 꿰기라고 하는데, 전업 작가는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그래도 구슬을 매일매일 열심히 꿰어 원고를 넘기면 생활비가 나오는 번역과 달리, 책은 쓰면 쓸수록 가난해질 수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한 이유도 있다.
작가의 꿈을 반대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재능에 회의를 가지게 되며(재능의 유무는 차치하고라도), 그러다 보면 근본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게 되는 순간이 종종 온다. 이 글이 잘 쓴 글일까, 나는 잘 쓰고 있는 것일까. 누가 내 글을 읽어줄까? 세상에 내놓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일까? 이런 온갖 번민에 시달리며 유리 멘탈로 변해가는 작가들을 많이 봤고, 나도 글을 쓰면서 그렇지 않아도 한없이 아까운 머리숱이 한 움큼씩 빠지곤 했다.
사랑하는 딸이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다. 평생을 프리랜서로 생활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며 살아온 나와 달리, 릴리는 일정한 시간에 출근했다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단단한 생활을 하길 원했다. 퇴근하면 일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거나,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집에 가서 뒹굴뒹굴 푹 쉬기를 원했다. 자신을 소모하지 않고 방전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평생 나를 관리하고 통제해야만 살 수 있는 프리랜서이자 작가라니, 내 악몽이 재현되는 것 같아 끔직했다.
나의 노골적인 반대에 부딪힌 릴리는 아나운서를 해볼까, 하는 말로 내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놓더니(사실 내 장래희망이 아나운서였…) 그다음엔 웹소설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나는 또다시 “그런 소설을 쓰기에 넌 너무 어리고 아는 게 없잖아!”라고 설득하며 좀 더 크고 공부도 더 많이 한 후에 쓰라고 단념시켰다.
그렇게 릴리는 여러 가지 꿈들을 상상하면서, 사실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는 방황의 시절을 보내다 이런 망언을 하기도 했다. 사춘기의 반항이 절정에 달한 중2 때,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생을 살아도(그러니까 적당히 놀고먹으면서) 괜찮겠다고 한 것이다. 아무리 우리나라 중2들이 무서워서 북한군이 쳐들어오지 않는다지만, 그때는 나도 빡쳐서 이성을 잃고 말았다.
“내가 고작 널 알바생으로 키우려고 이 고생을 한 줄 알아! 도대체 생각이란 게 있어, 없어?”
릴리는 내 분노에 찬 절규를 듣다가 대꾸도 없이 제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그 후 한동안 릴리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사이에 금기 사항이었다.
그러다 나의 엄마, 그러니까 릴리의 외할머니가 고관절 수술로 병원에 입원하셨던 적이 있었다. 마침 방학이고 공부와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릴리가 낮에 간병을 맡았다. 다정하고 싹싹하게 간호하는 릴리는 병실 할머니들 사이에서 인기 폭발이었다. 할머니가 퇴원하고 얼마 후 릴리는 의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할머니 병간호를 하면서 깨달았는데 사람들을 돌보고 보살피는 일이 좋고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나.
와, 드디어 나에게도 평생 알바로 놀고먹는 딸이 아닌 의사 딸이 생기는 건가? 할렐루야! 물론 릴리의 학교 성적이 바닥을 깔아주는 수준이며, 평소 릴리가 절망적으로 덜렁대는 데다 손을 대는 물건이나 기계는 죄다 부서지거나 고장이 나는 기이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모른 척한 채 마냥 행복했다. 그 후로 릴리가 의대에 가겠다고 공부한 이 년 동안 실수로 의료사고를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상상을 하며 가끔 식은땀을 흘렸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간에 몇 가지 현실적인 문제(주로 성적이지만)로 의대가 아닌 심리학과로 목표를 바꿨다(릴리가 의료사고라도 일으킬까 봐 노심초사하던 나는 비로소 안도했다). 애초에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었으니 방향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다. 릴리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 그중에서도 기왕이면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그런 릴리의 얼굴이 무척 편안해 보여 나는 무조건 응원하겠다고 했다.
내가 바라는 릴리의 꿈은 뭘까? 물론 아직도 릴리가 ‘재벌’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몰래 간직하고 있다(꿈은 꾸라고 있는 거잖습니까). 다만 릴리도 재벌 엄마를 바라는 마음은 같을 테니 공평하게 나만의 비밀로 하고.
나는 릴리가 ‘릴리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바라는 릴리가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자신’이 되기를. 다만 뭘 해도 좋으니 어지간하면 전업 작가는 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아멘.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이 시대 2인 가족의 명한 풍속화 / 박산호 지음
2020년 12월 1일 출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