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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Nov 16. 2023

"외동은 자기밖에 몰라."

프롤로그

외동아이를 둔 부모라면 어렵지 않게 듣는 말이다.

외동은 자기중심적이고, 버릇없고, 양보할 줄 모르고, 욕심이 많고..... 한마디로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의 편견이 많다. 심하게는 아이를 하나만 낳은 부모에게도 이기적이라는 말을 던지기도 한다.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편견도 있지만, 외동아이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걸러지지 않은 편견이 들리면 덜커덕 걸려 자연스럽게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억울함과 더불어 의문이 생긴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이의 비율에 정말 외동이 많은 걸까. 객관적인 데이터가 실제 하는 것일까.

아이들이 다니는 단체 활동 기관에서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를 발견하는 상황은 어렵지 않게 만난다. 아이들이라 함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해 타인을 배워가 중에 있는 존재니까. 그런데 때마침 그 행동을 한 아이가 외동인 경우 세상을 떠돌던 그 편견에 확신을 더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물론 있다. 내 아이만큼은 외동이라는 조건 뒤에 따라붙는 편견이 없도록 신경 써서 조심한다 하더라도 복병은 가까이에 있다. 충분히 짐작 가능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표적인 복병이다. (그분들의 사랑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나뿐인 손주가 닳을까 아깝고 소중해서, 온 우주의 중심이 당신의 눈앞에 있는 듯 아이를 대하신다. 밥을 먹을 때면 손주가 한 번이라도 젓가락질한 반찬은 모조리 아이 앞으로 옮겨 주신다. 그래서 식사가 끝날 무렵이면 대부분의 반찬이 아이 앞에 복잡하게 모여있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을 자기 앞으로 아무렇지 않게 옮기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아이에게는 악의가 있었던 행동이 아니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잘 가르쳐야 한다. 

"ㅇㅇ아,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ㅇㅇ이가 최고야. 근데 다른 아이들도 그 아이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께 최고야. 알지?" 타인을 배워가는 아이에게 잊을만하면 한 번씩 해주었던 말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정에서 비슷한 또래의 형제자매가 없다보니, 타인을 배려하는 부분에서는 가르칠게 더 많을 수밖에 없다. 한 번은 아이가 초등학생이었을 무렵 지인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데 본인의 그릇이 비었다고 먼저 일어나 버리는 모습에 민망했던 경험이 있다. '아, 학교에선 식판을 비우면 당연히 일어나고, 집에선 본인보다 늦게 먹는 어린 동생이 없으니 기다려야 하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겠구나. 엄마 아빠가 먼저 먹고 늘 기다리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구나.' 어떤 환경에서는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것도 콕 짚어서 일러줘야 하는 부분이 아직도 많이 남았구나 생각한 날이었다.


좀 예민하다 할 만큼 신경 써서 키우다 보니, 아이가 크면서는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아이가 외동 같지 않아요." 이 말 자체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어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행이라 여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다섯째 중 막내로 자란 나 또한 어릴 때 막내에 대한 편견을 많이도 듣고 자란 기억이 났다. 막내들은 자기중심적이고, 버릇없고, 양보할 줄 모르고, 욕심이 많고.. 그 편견 또한 외동에 대한 편견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아예 편견을 만들어 덮어 씌우기를 좋아하거나 즐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서 내가 가진 편견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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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외동이지?"라는 이 말을 듣지 않게 하려고 고군분투하며 아이를 키웠던 이야기를 연재해보려 한다.

어떤 이야기는 외동에 국한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그저 단순한 이야기에 머물 수도 있겠다. 다만 둘 이상을 키워본 경험이 없는 지라 육아 안내서라든지, 육아 꿀팁이라는 대단한 말을 붙이진 못한다. (마찬가지로 둘 이상을 키우신 분은 하나를 키우는 입장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부부가 아이와 집에서 뒹굴며 놀았던 이야기(: 홈뒹굴링)가 동떨어진 이야기로 느끼는 분이 있을까 해서 미리 '외동'을 키운 이야기임을 밝힌다.


아이와 장난감 없이 놀았던 ("놀아주는"이 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야기, 열일곱 살이 된 아이와 우리 부부가 책을 읽는 장면이 사진첩에 흔히 등장할 수 있게 된 이야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간 홈스쿨링을 했던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런 내용을 쓸 작정이었음에도 서두에 외동에 대한 편견이 이렇게 등장할 일인가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알게 모르게 나의 뇌 속에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부부에게 아이가 하나든, 둘이든, 다섯이든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임을 존중하는 세상에서 편견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기를. 세상을 배워가는 아이들을 잘 기다려주는 세상이 이루어져 가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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