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교육에서 대학으로
중고등 과정을 대안교육을 선택한 아이는 작년에 수시를 준비해서 올해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 진학에 대해 우리 부부도 아이도 자유로워진 상태였지만 결국 진학을 선택한 것은 대학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아이의 의지였다. 아이가 좀 더 다채로운 20대를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했지만 이 선택 또한 존중하며 박수를 보내고 함께 기뻐했다. 남들이 보면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학을 들어간 건가 할 정도로 많이 기뻤다. 대학의 이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여전히 배움에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배움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감동이 있었다. 배움의 크기는 학교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들어도 인정할만한 대학에 아이가 진학하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홈스쿨을 시작하면서 다른 길로 가더라도 보란 듯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는 그런 결과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5년을 지나면서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가 대학 진학이 아니라 취업이나 창업을 해보겠다고 했더라도, 긴 여행을 가겠다고 했더라도, 쉬면서 다음을 생각해 보겠다고 했더라도 다 응원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했던 선택들에서 생각지 못했던 배움을 얻으면서 어떤 선택이라도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3월이 되고 아이는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통학하며 길을 찾고 있다.
몇 호선을 타고 어떻게 갈아타는 것이 빠른 코스인지, 몇 호선을 어디서 갈아타야 가장 적게 환승하는 편한 코스인지, 중간에 버스를 타면 어디서 갈아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하루하루 오가며 다양한 통학 방법을 연구 중이다.
문을 나서면서부터 또 다른 배움의 시작이다. 의도치 않게 더 오래 걸리고 더 불편한 코스로 귀가한 날도 있었고, 낯선 길이라 반대 방향으로 탔다고 연락이 온 날도 있었다. 헤매는 그 시간 또한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사소하게만 보이는 것들까지도 쌓여서 또 다른 배움을 남길 것이다. 아이가 새로운 길에서 새로운 배움을 찾아가는 중일 때면, 나도 배움에 시동이 걸린다. 지금의 나이의 아이에게 부모가 두어야 할 거리는 얼마만큼인지 역할은 무엇인지 다시 찾아가고 다시 배워간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부모 역할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하지만 그 길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 어려운 것이 결코 힘겹기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처음으로 걸음마를 떼고, 처음으로 엄마를 부르는 순간과 같은 감격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부모가 아이를 바라보는 만큼 아이도 부모를 바라보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와 나는 지금이 그때에 와있는 듯하다. 함께 헤매고 함께 찾고 함께 배우는 또 다른 코스의 시작점에 섰다. 설레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