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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mood Jun 02. 2021

빠른 것이 좋은 것만이 아님을, 천천히를 배워야 할 때



운영하고 있는 비즈니스가 한국 시차에 맞춰, 한국사람들과 연락해야 하는 일이 잦다.

오늘도 역시나 수입하는 일 때문에 식약처, 관세청 등에 신청서를 접수하며 일을 시작했다.


신청서를 넣으니 담당자가 전화가 와서 물건이 도착하지 않은 거 같다며 자기가 오늘 3번이나 왔다 갔다 확인을 했다고 불평하셨다.

이 담당자분은 혼자 급하셨는지 내 신청서를 반려 처리하셨다. 비즈니스 시작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반려처리가 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고 물건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시 신청했더니 담당자는 전화가 와서 왜 또 신청했냐며, 물건이 어떻게 그 1시간 안에 올 수가 있냐며 오히려 나에게 따지셨다.

나한테 물어보면 뭐하나, 결국 물건이 도착한 게 맞았고 신청서는 수리됐다.


그리고는 또 전화가 오셨다.

수수료 통지서가 아직 도착 안 했겠지만 이 수수료를 빨리 안내면 자기가 또 반려를 시키겠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셨다.

"아니 아직 수수료 안내서도 못 받았어요. 얼마 내는지도 모르고, 받으면 바로 낼 테니까 걱정 마세요"라고 답했다.


또 한 번은 수입 통관하는데 공무원분들이 아주 빠르게 신청서를 수리해주며 통과가 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담당자분들이 신청서 내용을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넘겨줘 결국 문제가 생겨 시간과 비용이 2배로 걸렸던 적도 있다.


정신이 없다.

뭐가 그렇게 급할까.


내가 빨리 처리해달라고 한 적도 없고 보채지도 않았다.

한국과 일적으로 연락을 할 때마다 나까지 조급해진다. 이유 없는 빨리빨리에 맞춰 서두르다 보면 디테일을 놓쳐서 결국 두세 번 일을 반복하게 된다. 일이 처리되는 내내 불안감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얼마 전 덴마크에서 은행계좌를 개설하려고 은행 영업시간을 찾아봤더니

월요일에서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였다.

말도 안 되는 영업시간에 황당했지만 다행히 웬만하면 모든 게 다 온라인으로 처리가 돼서 마찬가지로 신청서를 접수했다.

하루가 지났고 역시나 전화가 왔다.

한국의 담당자분과는 다르게 매우 이성적이었고 하나하나 시간을 들여 확인해줬으며 최대 14일이 걸릴 거라고 하며 업무가 해결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불안하지도 않고 조급하지도 않다.


나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를 생각해봤다.

거래처에 발주를 넣으면 거래처 사장님들이 항상 하는 말씀이 있었다.

"이거 언제까지 맞춰야 돼요?"

그럼 내가 항상 하는 말은

"최대한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이성적으로 일을 하고 싶었지만 매일 감정적으로 더 치우쳐져 일을 했던 것 같다. 일도 많고 빠른 성과를 원하는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급해지고 바쁘게 처리하다 보면 구멍도 생기고, 그러다 보면 또 감정적으로 일을 대하게 되고 그렇게 쌓이는 스트레스는 퇴근 후 술자리로 풀고 악순환이었다. 일을 빨리하고, 빠른 결과를 내고 또 빠른 처리하는 것이 일을 잘한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도 나와 또 그 한국 담당자분에게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한국과 한 발자국, 아니 열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정말 한국은 급하다. 빠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발전도 했겠지만,

빠른 것만이 꼭 좋은 것이 아니라는 걸 느낀다. 이제 다시 천천히를 배워야 할 때 같다.

로켓 배송, 새벽 배송, 오늘 출발 등과 같은 자극적인 이런 문구들은 빠른 것이 좋은 것처럼 들리게 한다.


이럴수록 사람들은 감정적이게 되고, 빠르지 않을 경우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또한 뭔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일 수도 있다.


지금도 한국 거래처분들은 "언제까지 납기 해야 되나요?"라고 항상 물어보신다.

그럼 이제 나는 한 달 정도 여유 있다고 말씀드리면

넉넉하다며 목소리에 한결 긴장이 풀리신다.


덴마크에서는 업무가 내려오면 기한이 아주 넉넉하게 정해져 있다거나 혹은 아예 정해져 있지 않다.

언제까지 하면 되냐고 굳이 한국인처럼 물어본다면 대게 대답은 이렇게 나온다

"없어. 그냥 네가 그 일을 다 하면 알려줘"


속도는 느리긴 하지만 정확히 처리한다. 맡은 일에 대해 책임감이 강하다. 스트레스가 확연히 덜 하다.

직원들도 감정적이지 않다. 한국처럼 업무량이 많거나 근무시간이 길어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을 테니까.


내가 살고 있는 덴마크는 은행은 물론 대부분의 공공기관 혹은 상점들도 영업시간이 천차만별이다. 고작 하루에 3시간 운영부터 다양하다. 매일 오픈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나도 여기에 적응돼서 그런지 오늘 아니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아니면 다음 주에 하면 된다.

조금 늦는다고 내 삶이 달라지는 건 없다.



빠른 것이 꼭 좋은 것 만이 아님을,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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