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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Nov 11. 2020

내가 제일 힘든 줄 알았어

 




서른을 앞두고 모든 것을 그만뒀다. 



전력질주를 하다 멈추자 트랙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예전 같으면 '아, 멈추면 안 되나 보다. 이러면 큰일 나는구나.' 반성하면서 다시 뛰기 시작했을 텐데 이번에는 그 시선들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남들은 나 대신 달려줄 수 없다. 결국 달려야 하는 건 나다. 그렇다면 달리고 싶은 곳이 이곳이 맞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여기가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멈춰서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남들의 눈총 어린 시선이나 조언을 빙자한 다그침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무시할 수 있었다.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시작했다. 그중에는 왜 이런 걸 하고 싶어 하는지 나조차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것들은 다 도전해봤다. 그 시기에 동물에 대한 강의를 접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나는, 막연하게 스스로를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강의를 수강했다. 미처 그때는 몰랐다. 그 선택이 내 인생을 바꿔놓을지는.



동물에 대한 강의라서 귀여운 동물들이 잔뜩 나올 거라고 기대했지만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강의에서는 현실에 있는 동물들을 그대로 보여줬다. 산에 도로를 내고 관광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야생동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평생을 동물원에 갇혀 살아야 하는 전시동물들은 정신을 놓았다. 실험동물들은 각종 화학물질과 약물로 실험을 당하다 죽음을 맞이했다. 농장동물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생명이 아닌 '상품' 취급을 받았다.

 


충격적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픽션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수없이 오열하게 만들었다. 받아들이기엔 벅차서 그랬을까, '혹시나 한쪽에 치우친 의견이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그래서 책을 찾아보고, 다른 강의를 들어보고, 다큐멘터리를 찾아봤다.



그리고 확실해졌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는 한없이 잔혹한 곳이었다.






일방적인 가해자



나에게는 늘 삶이 버겁게 다가왔다. 그 뿌리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관계'는 나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남들의 말에 휘둘리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가장 큰 행복을 안겨준 것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린 것도 모두 사람이었다. 



누군가로 인해 삶 자체가 휘청일 때는 상대방을 많이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 나 때문에 눈물지을 때는 반대로 내가 원망받을 정도로 '나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주고받음이 반복되고 나니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이지만 또 다른 관계에서는 피해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인간이 아닌) 동물과의 관계는 달랐다. 거기서 나는 철저하게 가해자였다. 근 30년을 가해자의 입장으로 살아왔는데 아무도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지금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우연히 그 강의를 접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제일 힘든 줄 알았어



남들 기준에 맞추어 사느라 스스로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살았다. '좋은' 관계를 깨트리기 싫어서 참고 참다 보면 당하는 쪽은 나였다. 그래서 난 내가 제일 힘든 줄 알았다. 



그런데 남에게 싫은 소리 하나 하기도 어려워하는 나도 동물의 희생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내가 편하게 이동하기 위해 고라니의 터전을 파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 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토끼가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건 몰랐던 일이기에 괜찮은 일이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집 식탁에 올라오는 돼지와 소와 닭은 '고기'를 좋아하는 내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나자 속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터져버렸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제일 힘들고, 내가 제일 불쌍하다는 자기 연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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