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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Dec 28. 2020

당신의 정답이 누군가에겐 오답일 수 있다는 것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모르는 거야.
해보지도 않고 도망치지 마.



대기업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대기업'에 목을 매게 된 계기였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른 채 갈팡질팡 하던 시절, 남들은 내 나이를 보고 취업전선에 뛰어들기에 너무 많은 나이라고 했다. 그 말에 조바심이 나서 어디라도 취직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사회적 기업에 대해 알게 됐다. 다른 곳에는 관심도 흥미도 없던 내가 사회적 기업에는 제법 관심이 생겼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 의미도 있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주변인들의 반응은 냉혹했다. 그런 곳은 월급은 조금 주고 일은 많이 시키는데 버틸 수 있을 것 같냐는 '걱정스러운' 말부터 그 월급으로 생활이 가능할 것 같냐는 '현실적인 조언'과, 왜 대기업에 도전도 안 해보고 도망치냐는 비난까지.



그들에게 난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고, 시도도 안 해보고 도망치는 겁쟁이가 되어 있었다. 그 당시 난 '아직 어려서 모르는 거야'라던가 '네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라는 류의 말에 유독 약했다. 그 논리로 덤벼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더 많이 살아봐서 세상을 더 잘 안다는 그들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오답의 시작



관심도 없던 기업들에 대해 알아보고, 그들의 채용 전형과 일정을 확인해가며 수십 곳에 서류를 제출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계속 퇴짜를 맞으니 (그것도 왜 떨어졌는지 이유도 모른 채) 오기가 생겼다. 어느새 어디라도 괜찮으니 남들이 알만한 기업이 나를 선택해주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수십 번의 탈락 소식을 듣고 난 후에야 두 곳에서 서류 통과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둘 중에 더 '유명한' 기업에 집중했다. 인적성 검사, 1차 면접, 합숙 면접, 최종 면접까지 그 과정을 무슨 정신으로 버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최종 결과가 발표되기 전 '이 짓을 또 반복하기는 정말 싫은데 여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는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가득 찼던 기억밖에 없다.




입사하자마자 신입 합숙 훈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합숙이 시작된 첫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합숙 훈련이 진행될수록 그 느낌이 강해졌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었다. 여기서 그만두면 나는 또 겁쟁이가 될 테니까. 그래서 버텼다. 합숙 훈련도, 신입 교육도, 부서에 배치되고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했을 때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 들어왔다는 느낌은 확신으로 바뀌었고, 업무를 하면 할수록 기업의 부당함과 부조리함이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부당함과 부조리함을 관습처럼 이어가거나, 기업의 네임밸류로 가리거나, 혹은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견딜 수 없었던 점은, 내가 여기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나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에게는 실패인 '성공'



일원이 되고 싶어서 온 마음을 다 쏟아붓고, 일원이 되고 나서는 체력과 시간을 다 쏟아부었던 그곳을 미련 없이 나왔다. 하지만 나만 미련이 없었을 뿐 주변인들의 미련은 어마어마했다. - 벌써 그만두는 게 말이 되냐, 조금 더 버텨보면 괜찮아질 거다, 정신 차려라.



내가 왜 퇴사를 선택했는지, 이 조직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에게는 그곳이 여전히 '정답'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그들이 옳다고 하는 것이 나에게는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 내 목소리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를 들을 줄 몰랐다. 세상을 더 오래 살아서 혹은 사회경험이 더 많아서 나보다 더 많이 안다는 그들의 소리에 더 집중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정작 나를 위한 말은 하지 않았다. 나를 진정으로 위하는 것은 내 목소리 뿐이었다. 아마 이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도 내 목소리를 신뢰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누군가 무모하다고 하거나, 네가 아직 몰라서 그런다는 식의 말을 하면 그 말에 흔들려 인생의 방향을 바꿨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성공으로 보이는 것이 나에게는 좌절만 안겨주는 실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사회가 말하는 '성공'에서, 그리고 그들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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