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부럽다.
20대로 돌아가고 싶다.
누구나 하는 말이고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이 나올 때마다 공감하지 못하고 혼자 붕 떠 있다.
20대 때 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남들의 말에 흔들렸고, 이건 아닌 것 같다고 괴로워하면서도 다 버리고 떠날 치기도 없었다.
남들은 말했다.
'좋은' 대학에 가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지금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고 합격만 하면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그래서 최선을 다해봤다. 최선을 다해도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는 사실은 나를 괴롭게 했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더 괴로웠다.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었고 갖고 있던 문제를 고스란히 안은 채 새로운 트랙을 달려야 했다.
남들은 말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취업만 잘하면 앞으로 걱정할 게 없다고.
기시감이 느껴져서 반발도 해봤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도망치지 말라고, 다들 좋은 곳에 취직하려고 안달인데 왜 가보지도 않고 벌써 판단하냐고, 일단 들어가 보기나 하라고, 그러면 이번에는 정말 다를 거라고 그들은 확신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해보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확신하는 그들 앞에서 도망치는 실패자가 되긴 싫었다. 그래서 또 최선을 다해봤다.
몇백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 모두 축하해줬고 나 역시 다른 인생이 펼쳐질 거란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달라진 건 없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또 다른 트랙이었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일했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키는 일은 해야 했다. 금요일 퇴근 후 잠을 자기 시작하면 토요일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눈이 떠졌다. 그렇게 부족했던 수면을 겨우 채우고 나면 새로운 일주일이 시작됐다. 그곳에서 '내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 체력, 감정을 다 쏟아붓고 나면 통장에 월급이 들어왔다. 신입치고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인생을 팔아 돈으로 바꾸는 것 같았다. 인생이 없어지고 나니 돈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다.
드라마라면 이 시점에서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어야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퇴사를 할 당시에도 '여긴 아니다'는 확신만 있었을 뿐 내가 뭘 원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첫 직장부터 너무 힘든 곳을 들어가서 그렇다. 다른 곳에 들어가면 잘 맞을 거다."는 남들의 조언을 또 받아들였다.
이번에는 하루에 8시간만 일하는 곳으로 선택했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곳이었다. '전 직장이 업무시간도 길고 일의 강도도 높아서 그렇게 힘들었겠지. 소위 말하는 워라밸을 지킬 수 있으면 행복하겠지.'가 그 당시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에겐 이직한 곳과 전 직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직한 후 몸은 훨씬 편해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에게 이직한 곳은 하루의 1/3을 파는 곳이었고, 전 직장은 하루의 2/3를 파는 곳이었다. (그리고 예상하겠지만, 인생을 더 많이 팔았을 때 월급은 훨씬 많았다.)
두 번의 경험으로 '나는 조직생활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조직에서 추구하는, 소위 '이윤 창출'이라는 가치는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하루에 8시간을 일해도, 16시간을 일해도 나에게는 그 시간이 힘들기만 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럼 너한테 의미 있는 일은 뭔데?"라고 누군가 물었다면 그 당시 난 아무 대답도 못했을 것이다.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다들 그 정도는 한다고 하니까 남들 기준에 맞춰 사느라고 정작 '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안 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남들 말에 휘둘리느라 부단히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경험들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타인의 기준과 조언이 나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두 번째 직장을 그만뒀을 때에도 남들은 빨리 다른 곳으로 이직하라고 성화였다. 경력이 단절되면 큰일이라고. 지금 스펙으로도 나쁘지 않으니 얼른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그때 난생처음으로 남의 말을 무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의 말을 무시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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