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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Mar 14. 2022

비누 공방스럽지 않은




여기 뭐하는 곳이에요?



밖에서 안을 둘러보다가 갸우뚱, 입간판을 보고 갸우뚱하다 문을 열고 묻는다. 매번 겪는 일인데도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 찰나의 고민 끝에 대답한다.



비누 공방이에요.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개운하지가 않다. 



소의 젖, 산양의 젖, 닭의 알 같은 동물 착취로 얻어낸 재료 없이도 좋은 비누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식물성 재료라고 해도 팜유처럼 자연과 동물을 해치는 재료는 사용하지 않고 훨씬 좋은 비누를 만들고 싶었다. 그 비누를 통해 자연과 동물을 착취하지 않고도 충분히 좋은 걸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나아가 자연과 동물을 해치고 인간만 잘 살 수는 없다는 걸, 결국 우리는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인 것 같다. 비누 공방이라고 대답하고 나면 뭔가가 텁텁하게 남는 것은.






이런 건 줄 몰랐어요.



클래스가 끝난 후 나오는 반응 중 하나다. 그 말에는 비누'만' 만드는 시간이 아니어서 당황스러웠다는 의미도 담겨있을 것이다.



비누 하나를 만들 때에도 의미를 꾹꾹 눌러 담는 나 같은 사람에게 클래스란 상대방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그래서 공존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같은 것이다. 그러니 비누 클래스를 할 때면 왜 '비건 비누'를 만드는지, 식물성 재료이지만 팜유나 일반 코코넛유는 왜 사용하지 않는지 구구절절 설명하곤 한다.



그랬을 때 당황하는 사람도 있었고, 조금은 귀찮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공감했고, 더 많이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알려주는 곳이 없었다. 진실을 보고 싶어도 숨겨져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비누로 시작했지만 비누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육식주의, 종 차별주의 같은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비누 공방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해 다루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점점 더 '비누 공방'이라는 단어로는 다 설명되기 어려운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고 느낀다. 덕분에 '여기는 뭐 하는 곳이냐'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건 더 어려워졌다.




돌이켜보면 처음도 그랬다. 비건이 전혀 주목받지 않던 시절 비건으로 비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당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비건 비누가 뭐예요?"였다. 요즘은 아무도 비건 비누가 뭐냐고 묻지 않는다. 



지금도 그런 상황 아닐까. 이곳의 모든 활동을 아우를만한 마땅한 표현이 없는 것 (혹은 떠오르지 않는 것) 아닐까. 아무도 찾지 않을 때 비건 비누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처럼, 지금의 트망트망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어떤 새로운 형태로 나아가는 중이기 때문에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 아닐까.






비누에서 시작했지만 비누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이 사회가 '공존'이라는 가치를 등한시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만 잘살면 돼'라는 생각이 팽배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더 깊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해, 새로운 판을 열고 도전하려고 한다. 다 같이 모여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어떤 방법으로 해결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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