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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Nov 13. 2020

봄동 때문이야

비건 비누 공방을 시작하게 된, 아주 사적인 이유




고기를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인이 나를 보더니 마침 생각났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어제 마트 가서 삼겹살 사려고 했는데, 갑자기 네 생각이 나서 봄동을 샀어.



깜짝 놀랐다.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 적도 없었고, 왜 고기를 끊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한 적도 없었다. 단지 앞으로 나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알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의 행동이 그 사람의 선택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나로 인해 누군가 동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늘 하던 행동도 변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난생처음 느껴보는 벅찬 감정이 물밀듯 밀려왔다. 





  

동물과의 관계에서 내가 일방적인 가해자였다는 걸 깨닫고 나서 어떻게 하면 이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했던 일은 고기를 끊는 것이었다. 사실 비건식을 하고 싶었으나 그 당시 나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육류, 해산물, 달걀, 유제품, 꿀 등 동물은 물론 동물을 이용해서 생산한 것을 먹거나 소비하지 않는 것을 비건이라고 한다.) 30년을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으며 살았고 그중에서도 고기를 즐겨 먹었기 때문에 고기를 끊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일'었기 때문이다.



동물에 대한 착취와 학대를 최대한 배제하자는 비거니즘의 가치에는 공감하면서도 유독 먹는 것에는 행동력이 따라주지 않는 스스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비거니즘을 먹는 것부터 적용하려고 하니 이렇게 힘든 건 아닐까.



우리는 매일 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먹는 것부터 바꾸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먹는다는 것은 굉장히 민감한 이슈이기도 하다. 실제로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면 갑자기 날 어려워하거나, 은근히 비꼬거나, 대놓고 비난하는 경우를 왕왕 겪었다. 



비거니즘의 경우 더 심했다. 비건이 화제로 떠오를 때면 들으려고도 하지 않거나, 심한 말로 공격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런 과정에서 비거니즘이 담고 있는 진정한 가치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비건'에 대한 장벽을 낮추고 싶었다. 좀 더 친근한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먹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접근할 방법을 고민했고, 그 결론이 비누였다. 우리는 매일 씻는다. 씻을 때 어떤 제품을 사용할지는 먹는 문제보다 덜 민감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그래서 '비건 비누'를 만들기 시작했다. 삼겹살 대신 봄동을 선택했던 지인처럼, 누군가에게 내가 만든 비누가 봄동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랐다. 동물을 해치며 만든 제품을 선택하고 싶지 않을 때 내가 만든 비누가 함께 하길 바랐다.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만든 비누를 통해 반감 없이 비거니즘에 대해 접하길 바랐다. 



 





씻을 때, 설거지할 때, 손빨래할 때도
팜프리 비건 비누를 사용한다면
사람 때문에 고통받는 동물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팸플릿에 실은 문구이다.



단순히 제품을 팔고 싶은 게 아니었다. 제품을 통해 가치를 전하고 싶었다. 비거니즘을 알리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동물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를 많이 느꼈다. 팜프리 비건 비누가 담고 있는 가치를 알아보고 응원해주는 분들도 있었지만, 사업적으로만 접근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비건'을 마케팅적으로 사용하고, 돈을 벌기 위한 도구로 비건 비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판매'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실제로 많은 회의감을 느꼈다. 동물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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