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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렸소

동물가족

by 글지으니


우리 집에는 집 나간 소와 고삐 풀린 망아지가 있다. 집 나간 소는 집이 그리워 애처로운 표정을 짓지만 내 눈에는 귀여운 소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는 어디로 튈지 몰라 늘 주시하고 있다. 소와 망아지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둘이다. 소 띠인 큰 아들과 밀레니엄 베이비인 둘째는 용띠이다. 큰 아들은 소처럼 우직하고 작은 아들은 어디로 스르륵 가버릴까 봐 늘 눈과 귀를 쫑긋거려야 한다.


아들 둘과 작고 소소한 추억들이 있지만 그 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아들은 커서 자기만의 세계에 살고 있다. 옛날 어른인 나는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모르고 아이를 키웠다. 부모님은 농사일로 바빴기에 나는 일 도와주던 말 더듬는 언니를 더 많이 봤는지 어렸을 때는 나도 말을 더듬기도 하고 말을 잘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열심히 일하시고 우리를 위해 학교에 기부금을 내어도 나는 소풍 때 흔한 연필 하나도 못 받았었다. 시험을 볼 때 누런 종이에 피아노에도 하얀 글씨로 누구 어머니 회장님의 기부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기억하기보다 아이들과 놀기 바빴다. 가끔 어렸을 때 소꿉친구들과 모임을 가질 때면 친구들은 어렸을 적 우리 부모님이 학교에 많이 기부를 하셨다는 말을 들으면서 나도 어렴풋이 생각나게 했다.


그러나 그런 부모님보다 우리는 늘 모자란듯했다. 하지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부모님이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알고 컸다. 그렇게 우리 형제들은 우애 있게 지내며 누구 하나가 어려우면 달려가서 도와주려는 마음만은 누구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도 도우며 살았던 부모님을 보며 우리도 그렇게 하면서 각자 자신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월급쟁이보다 무언가 자유스러운 사람이 좋아서 남편과 결혼했다. 예전에는 부모님 그늘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놀기만 했는데 결혼하고 나니 우직하게 든든한 직장이 있는 남편들이 제일 부러웠다. 나는 큰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이 작아져서 그런지 용쓰며 살아내야 했다.


예전에 학교를 가려고 버스를 타면 맨 뒤는 아니지만 좀 뒤쪽에 갔다. 사람들이 들락거리지 않는 곳이 나는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앞쪽이나 바로 내리기 좋은 곳을 선호한다. 세월도 변하니 나도 변했다. 엄마가 되니 매사에 적극적인 태도가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알 수 없는 결핍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큰 아들은 커서 자기 몫을 똑 부러지게 하는 아이로 컸다. 우직한 소처럼 말이다. 남편은 말띠라서 가고 싶은 대로 가서 그런가? 그래도 나를 만나서 울타리에서 살아줘서 고맙다.


결혼 전에는 뛰어다니기도 한 것 같은데 결혼하니 집 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랑 나란히 걸으며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둘째는 어디로 승천할까 무서워 잘 보고 있다, 어디 여이주라도 떨어뜨릴까 나는 아이의 주위를 살핀다. 그래서 그런지 둘째 방에 가면 침대에 옷 폭탄을 보고 잔소리하다 이제는 그냥 정리하고 나온다.


집 나간 소는 그림을 취미로 그리기 시작한 사촌 아주버니가 아들 보고 가지고 싶은 그림을 골라보라고 하니 이 그림을 골랐었다. 그런데 아주버니는 이 그림에 아주 애착이 간다고 하며 더 손을 보고 싶다는 말에 다시 아주버니에게 드렸었다. 그렇게 이 그림을 올가을 개인전을 하면서 전시했었다.


나는 이 집 나간 소를 아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 아주버니에게 그림값을 톡톡히 주고 샀다. 하지만 사촌 아주버니는 우리 집안일을 잘 챙겨서 예술의 값어치를 높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집 나간 소는 내 집에 걸리게 되었다. 이 그림에는 여러 제목이 있었지만 아들은 <그렸소>라고 제목을 기억해 내고 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렸소>는 가여운 듯 삐친듯한 표정이 아들의 마음 같아 정감이 간다.


집 나간 소처럼 아들은 집을 떠나 멀리서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나의 마음속에 항상 함께 있다. 아들이 가엽지 않게 삐지지 않게 내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고삐 풀린 망아지인 줄 알았던 둘째도 이무기에서 용쓰는 모습이 늘 안쓰럽다. 혼자 멀리 뛰어가지 않고 나랑 함께 걸으며 말벗이 되어주는 남편도 늘 고맙다. 이렇게 우리는 동물 가족이 되었다. 그러면 나는 어떤 동물? 집에서 풀을 뜯으며 "으메!" 하며 말하는 엄마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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