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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방에 사는 여자
Sep 13. 2024
그냥, 날이 좋았고 배가 고팠다.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딸랑 소리가 났다.
구석에서 상품을 진열하던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카운터로 향했다. 나는 우선 맥주를 골랐다.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아서 가끔 마시는 맥주로 두 캔을 고르고, 두리번거리며 김밥을 찾았다. 매장을 두 바퀴 돌아도 김밥이 보이지 않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김밥은 오른쪽 구석에서 발견되었다. 야채김밥 한 줄을 고르고 좀 부족하다 싶어서 바로 옆에 있던 샌드위치도 하나 골랐다. 건강을 생각해서 통밀 베이컨 샌드위치를 골랐다. 베이컨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통밀에 한 표를 주었다. 계산을 하니 칠천팔백 이십 원이 결재되었다.
아이들이 시켜 먹는 배달음식에 비하면, 푸짐한 점심 한 끼치곤 싼 금액이다. 집으로 가서 남은 밥에 남은 국을 먹으면 돈을 아끼겠지만 오늘은 그러기 싫었다.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오자, 낮 한시의 뜨거운 햇볕이 쏟아졌다. 양산을 펴고 가방을 멘 채
다리를 건너갔다. 다리 밑으로는 내가 자주
걷는 천변 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걷는 사람, 뛰는 사람이 보였다.
나는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다. 몆 개의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작은 숲으로 접어들었다. 방금 전까지 내가 한동안 앉아 있던 그 자리에 가방과 양산을 내려놓고 앉았다. 나를 쉬게 하는 나의 숲이다.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볕이 영글어가지만, 아직 한낮의 뜨거움은 피하고 싶은 여름 언저리다. 맞은편 산책로에 사람이 드물었다.
맥주 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시원하다.
등줄기의 땀이 싸악 씻겨 내려간다. 김밥 포장지를 벗겨서 일회용 젓가락으로 금 직한 김밥을 집어 먹었다. 아침도 안 먹고 낮 한시에
첫끼를 먹으니 맛있다. 김밥은 좀 짰다. 물대신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좋다. 멀찍이 떨어진 나무 테이블에 남자와 여자가 마주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보기 좋구나! 생각하며 맥주를 한 번 더 벌컥 마셨다. 좋다! 나이 드니 한낮의 공원에서 혼술도 스스럼없구나. 김밥을 다 먹고 샌드위치 포장지를 벗겼다. 두 번째 맥주 캔을 땄다. 까치들이 종종거리며 먹이를 쪼아 먹고 있었다. 까치는 까치의 먹이를 먹고 나는 내 먹이를 먹었다. 숲 그늘,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통밀 샌드위치도 조금 짰다. 맥주가 반쯤 남았을 때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책이 술술 잘 읽혔다. 맥주를 홀짝이며 책을 맛나게 읽었다.
동네 작은 서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인문학 강의가 있었다. 열 시에 시작해서 열두 시 십 분쯤에 강의가 끝났다. 날이 좋았고 집으로는 가기가 싫어 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 그늘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설거지를 하며 전화를 받는 그녀와 왜 아무리 살아도 사는 일이 익숙해지지 않는 것인지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폐암 말기인 아버지를 떠나보낼 이야기와 둘째 아들 녀석 이야기를 했다. 엄마를 화장해서 납골당에 홀로 모셔놓고 돌아온 날, 자식들 먹인다고 벅벅 쌀을 씻던 내가 참 징그러웠다.
그런 게 삶이고, 그렇게 앞으로 가는 거라고, 뼛가루 같은 쌀뜨물을 수채구멍으로 흘려보냈다.
아비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숨을 고르고 있고,
자식은 지 자식 걱정을 하며 살길을 도모한다.
아버지 돌아가실 일이 걱정이고, 자식 걱정이다.
그녀는 언니들과 엊그제 고향집으로 가서 아버지가 심어 두고 미처 거두지 못한 땅콩을 캤다고 했다. 그것을 그대로는 둘 수 없어 땅콩을 캐면서도 뭐 하러 캐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빈고향집에 가서 감도 따고 대추도 따갔던 작은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돌아가신 마당에 뭐 하러 그깟 것들을 모조리 따가나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 형님 생각 하며, 알뜰하게 다 따왔지!"
"부엌문 열고 자네 왔는가! 하고 형님이 나오실 것 같네!" 하시던 작은 엄마.
작은 엄마는 형님과의 이별을 그렇게 하셨던 것이다. 빈집에서 감도 따고 대추도 따며.
그녀와 통화를 마치고 외따로 떨어져 있던
내 손가락 한끝이 세상의 한끝과 맡다은듯 했다. 그리고 편의점으로 맥주를 사러 갔다.
용이 아저씨가 돌아가시기 전 병문안 가는 엄마를 모시고 갔었다. 산 송장처럼 누워있는 아저씨의 누런 얼굴에 대고 엄마는 얼릉 나아서 건강해지라는 말대신에 "개는 걱정하지 마유!
내가 밥 잘 챙겨 주고 있으니께!" 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엄마의 큰 목소리가 병실 안에 우렁우렁 울렸다. 병실 안 환자와 옆에 붙어 앉아 있던 보호자들의 눈길이 일제히 엄마에게 쏠렸다. 사람이 죽고 사는데 개밥이 다 무어란 말인가!
엄마와, 용이 아저씨와, 용이 아줌마는 죽음 앞에서 모른 척 물러나 있고 싶었던 것일까?
그때 나는 생각했다. 사람은 어떻게 죽을 수가 있지? 참 용감하구나! 이 세계에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저 세계로 저렇게 '개밥' 걱정을 하면서 건너갈 수가 있을까? 윗동네 마실 가듯 슬며시 건너가는 것이 죽음일까?
맥주를 마시며 고개를 드니, 건너편 벤치에 앉은 여자가 자꾸 흘끔거리며 돌아본다. 혼자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으니 이상 한지, 아니면 함께 한 모금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어가며 좋은 게 있다면,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술 한잔 마시라고 했었다. 아버지는 술주정을 달고 살았다. 엄마는 마당 바닥에 누워 누굴 믿고 사냐며 가슴을 쳤다. 술 한잔 마시고 욕지거리도 보란 듯이 내뱉고. 가슴속 응어리도 삭혀내길 바랐다. 엄마는 찌푸린 얼굴로 손사래를 치며
" 그 쓴 것을 왜 먹냐!" 하였다. 엄마가 술 한잔 했다면 나와 술친구가 되었을까?
어제는 엄마의 제사였다. 생신도, 추석 지나고 나흘뒤라서 명절로 퉁쳤었다. 제사도 추석 닷새 전이라 제사로 퉁친다. 자식들 위하는 엄마답다. 전날 장을 봐서, 전을 부치고 나물을 몇 가지 무치고 닭을 삶고 고기를 삶았다 송편도 사고 포도 준비 하고 정종도 샀다. 사과와 포도도 챙겼다. 탕국도 끓이고 하얀 쌀밥도 담았다. 추모 공원은 추석 전에 다녀가려는 참배객들로 붐볐다. 납골당 제례실에서 제사상을 차리니 상이 초라했다. 정종술을 따르고 절을 했다. 음복을 하면서 " 엄마! 술 한잔 하자!" 했다. 빗소리와 함께 엄마랑 술 한잔 했다.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듯 있었다.
빈 맥주캔을 찌그러뜨리서 비닐봉지에 넣었다.
건너편의 여자도 저쪽에서 마주 앉아 책을 읽던 여자와 남자도 없다. 나는 왜 사는가? 하찮은 질문을 하며 일어섰다. 나는 지금 어떤가?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딘가에 있을 나를 이제 그만 데려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