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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May 09. 2024

봄을 먹는다.

오월이 되니  온통 초록이 지천이다.

푸르른 계절이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나는 마트에서 느낀다. 재래시장이 가까이 있었다면 즐겨 다니면서 시간의 흐름을 더욱 활기차게 느꼈을 것이다. 요즘은 일 년 내내 과일들이 진열되어 있고.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채소들이 장바구니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봄이면 딱 요맘때만 맛볼 수 있는 갖가지 먹거리들로 식탁이 풍성해진다.



햇마늘이 나오기 시작하면 부지런히 마늘장아찌를 담아. 석 달 넘게 기다렸다가 먹으면 매운기가 빠지고 맛이 잘 들어 아삭하다. 명이 나물이 마트에 보이면 사다가 장아찌도 담고 겉절이도 무치고. 생으로 쌈 싸 먹기도 한다.

장아찌용 작은 양파를 사다가 장아찌를 담아

한나절이 지나면 매운기가 빠지고 양념이 심심하게 베어 금방 먹을 수 있다. 다른 먹거리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장아찌용 파를 자주 사다가 장아찌를 담아 먹고 있다.

나트륨 섭취를 우려하여 장아찌를 짜지 않게,

심심하게 담아 먹고 있다.


얼마 전에는 마트에 오이지용 오이가 잔뜩 쌓여있길래 한 망을 사 와서 깨끗하게 씻고, 소금물을 팔팔 끓여 확 들이붓고 오이지를 담아서 시원하게 잘 먹고 있다.

나물 진열대에 참두릅, 엄나무순, 가죽나물, 오가피순, 차죽나물등이 한가득 쌓여 있었는데 가격이 한팩에 거의 만원을 훌쩍 넘어가서 좀 비싸다 싶어서 몇 번을 망설이며

그냥 지나치곤 했었는데, 때맞춰 나오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려니 하는 생각에, 요때 못 먹으면 일 년 내  못 먹는다는 생각에 참두릅과 엄나무순을 사다가, 참두릅은 살짝 데치고 엄나무순은 된장에 무쳐서 밥상을 차렸다.



지금은 이렇게 큰 맘먹고 사야 하는 귀한 것들인데, 예전 고향집 뒤란에, 마당가에나 앞산에, 밭둑에 흔하디 흔하게 있던 나물들이다.

엄마가 나물들을 뜯어다가 고추장이나 된장에 무쳐주면 밥그릇을 싹싹 비워내었다. 결혼을 한 후에도 바리바리 싸주시던 보따리들 틈에 늘 따라오던 갖가지 나물들이었다. 나물의 향긋함을 유달리 좋아해 늘 나물 반찬을 만드는데, 봄에는 풍성한 먹거리들로 즐거움이 배가 된다. 걷기를 하다 보면 어르신들은 길섶이나 숲에서 이런저런 나물을 뜯기도 하시는데, 나는 그만큼의 바지런함이 없으니 마트 진열대에서  그때그때 바뀌는 식재료들로 한 계절 한 계절을 살아간다.



야들 야들한 햇 마늘쫑이 나오기 시작했다.

요때가 지나면 대가 굵고 질긴 마늘 쫑만 나오게 될 것이므로 얼른 사다가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서 고추장양념으로 무쳤다.



 마당 끝, 텃밭에  마늘쫑이 삐죽 올라오기 시작하면 소옥쏙 뽑아서 된장찌개도 넣어먹고, 장아찌도 만들고 했다. 엄마 아버지가 들일을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 시간. 앞산 소나무 검은 그림자가 깊어지면, 밥을 안쳐두고 텃밭에서 된장찌개에 넣을  마늘쫑을 뽑고 아직 꽃술을 달고 있는 애호박을 땄다. 마늘쫑이 한 번에 쏙 뽑히면 기분도 상쾌해지고, 힘조절을 못해서 중간에 툭 끊기면 그게 무엇이라고 기분이 상했다.마늘쫑을 제때 뽑아줘야  땅속 마늘에 영양이 더 가서 더 실해지므로, 엄마는 마늘 쫑을 뽑아서 된장이나 고추장 항아리에 넣어  장아찌를 만드셨다.



예전 시댁 마당가에는 땅두릅 나무가 있어서 오월이 되면, 갓 올라온 땅두릅을 금방 따서 살짝 데쳐 먹는 것이 연례행사였는데 그 향이 정말 진했다. 커다란 밭에는 딸기, 참외, 방울토마토등 갖가지 과일과 채소가 주렁주렁 열리고, 뒤뜰과 마당가에는 과일나무들이 골고루 자라서 어린아이들의 풍성한 놀이터가 되어주었던, 시댁의 옛집은 이제 사라지고 대형 물류단지가 생겼다.



이제 고향 빈집에는 앵두가 소리 없이 열렸다가 떨어지겠지, 뒤란 오가피나무순들도 시들고 바삭하게 말라갈 것이다.

나는 오늘의 밥상에 무엇을 올릴 것인가  날마다 새로운 궁리를 하며, 봄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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