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그방에 사는 여자
Apr 16. 2024
봄날을 걷는다. 벚꽃은 더없이 화사하게 피어
꽃비가 되어 흩날리고 나는 두둥실 떠오르듯 걸어간다.
나는 봄이 즐거웠다. 봄을 기운차게 걸어 다녔다.
이번 봄엔 메어진 것인지, 얽히고설킨 마음 때문인지, 매일 걷던 산책로를 일주일 만에 나오니 벚꽃이 만개해서 데이트하는 커플들과 가족끼리 산책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한가하게 힘차게 걸어가기가 곤란하다. 여기저기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저들이라고 마냥 행복에 겨울 것은 아니나, 나는 쓸쓸함에 젖는다. 저들은 어쩌면 저렇게 외롭지 않은 것인가? '똑, 똑, 저기요'하고 비법이라도 물어보고 싶다.
저들은 아마도 요구를 하였고 누군가는 승낙을 하였겠지, 나는 요구를 거절도 당해봤고 승낙도 경험했을 터인데 거절당한 기억에만 붙들려 누군가 보내는 요구를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 시간을 행복하게 걸어가 볼 것인가 생각을 간추린다.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원인은 나에게 있는 문제들 앞에서 크게 한숨을 쉰다.
내 시간을 먹고 자란 아이가 나에게 빨간 패를 내밀며 정신 차리라고 외친다. 굳게 밟고선 발밑의 디딤돌이 엎어지고. 밑으로 아래로 떨어지는 꿈을 꾼다. 아이를 키우며 헌신해 온 것들이 다 거짓말이라고 착각이라고 누군가 소리친다.
자식도 부모도 탯줄을 끊고 타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리라. 내 지나온 수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사람이므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없는 것들은 아이에게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저리 이쁜 꽃도 금방 진다. 그러니 다들 서둘러 나와서 사진을 찍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이다.
그냥 있던 들풀은 알아채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소중하게 여겨주며 곁에 두고 싶은 것들은 금방 사라지거나 곁에 없는 것들이다.
그렇게 키우려고 아이를 키웠다.
당연히 있는 것을 알아채지 않아도 되게끔.
그리워할 까닭이 없도록, 그렇게 키우려고 아이를 키웠다.
알고도 모른척하고, 에둘러가는 길을 기다려 주는 것이 부모의 일이다.
사는 게 꼭 지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지난날 아이를 키우며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아이는 나를 밟고 지나갈 것이고
나는 살아갈 것이다.
맥주 한잔 할 친구를 다시 만들어아겠다. 간간히 생맥주를 마시던 동네 친구가 술을 끊어서 여간 적적한 게 아니다. 다시 마시자고
꼬드겨봐야겠다.
봄날을 다시, 걸어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