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몸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몸쓰기입니다. 몸으로 하는 글쓰기죠. 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욕망, 충동에서 춤이 시작됩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신체적 자원만큼 몸으로 표현해낼 수 있겠지요. 근력이나 유연성이 충분히 좋지 않다고 해서 춤을 출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유연성이 약하다면 약한 가운데서, 그 자원을 사용해서 최대한 표현하겠지요.
저는 '엄청나게 유연해야 춤출 수 있다' 혹은 '춤추려면 유연성을 무조건 미친듯이 수련해야 한다'라는 무조건적이고 강압적인 시선에서 유연성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유연성을 위한 유연성'이 아니라, 자신이 몸짓을 수행하며 진정 자유로운가, 자신을 몸으로 온전히 풍부하고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있는가 라는 표현의 내적충일감 혹은 표현의 질적수준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춤을 출 때, 처음에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가볍고 조악한 수준에서 자신을 표현하죠. 자신의 정신적 신체적 자원과 표현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어가면서, 지적사유가 깊어지고 인식의 틀이 확장되면서 표현욕구가 상승하게 됩니다. 그저 가볍고 얕은 수준에서가 아니라 더욱 내밀하고 풍성하게 나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고 싶게 되죠. 표현하는데서 자유로움과 깊은 충만감을 느끼고 싶게 되죠. 몸으로 표현하고 싶고 그 속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겁니다.
몸으로 표현하며 움직이고 싶은데, 자유롭게 뛰놀고 싶은데, 생각대로 몸으로 구현이 안되는 어떨까요? 예를 들면, 머릿속에서는 다리를 길게 펼쳐서 넓고 풍부한 원의 궤적을 표현하고 싶은데, 온전한 원을 그릴 수 있게 하는 고관절과 디리근육의 유연성이 받쳐주지 않는 거죠. 이런 식으로 신체적인 제약과 한계 때문에 표현이 온전히 구현되지 못하고 제한되겠지요. 움직임 영역을 할 수 없이 제한시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사실은 자유롭게 움직이고 표현하기 위해서, 섬세하고 풍성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유연성을 수련하는 것입니다. 정신이 신체제약에 갇혀서 결국엔 표현욕구마저 완전히 콩알만큼 작아져 사장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 일 것입니다.
관절과 근육을 천천히 스트레칭해주면 지속적으로 가동범위가 확장됩니다. 몸에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와 영역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신도, 표현도 열리며 확장되어 갑니다. 궁극적으로 몸과 마음의 경계가 사라지고 일치되어 온전히 나 자신이 되는데 한 발짝 다가서는 작은 준비호흡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