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직업의 세계처럼 무용도 치열한 경쟁과 생존이 있다. 내가 바라는 예술가들과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오디션이란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여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통과를 하고 작업에 들어가서도 작품을 만들어가는 전 창작의 과정에서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주어야 한다.
무용공연 준비과정이란 어떨까? 대개는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분위기나, 서로에게 영감이 되는 예술창작 작업을 떠올릴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꼭 그렇게 이상적이지만은 않다.
실상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무용수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치열함이랄지 암묵적인 질서나 묘한 기싸움 같은 정치적 분위기도 분명 존재한다. 안무자와 무용수 사이에서 자잘한 갈등과 마찰도 흔히 발생한다. 본인이 원하는 질감이나 감성을 구현해내기 위해서 안무자는 무용수를 심리적, 신체적으로 강하게 압박하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그저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냥 즐겁게 춤추고 작품을 만드는 일은 없다. 각자는 자신의 모든 패를 다 뒤집어 보여야 한다. 자신의 창조성, 신체적 기량과 개성을 온전히 보여주고 쏟아 부어야 한다. 그렇게 작품이 완성된다.
작품이 끝나면 나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척 소진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내 안에 착실히 축적되어가는 나만의 은밀한 실력이나 내공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내적으로 확장하며 상승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남은 절대 모르는, 나만 아는 깊은 만족감이자 자부심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나는 내가 함께 작업하고 싶은 예술가들을 마음속에 점찍어두고 한 판 한 판 게임 퀘스트를 깨어가듯 춤추고 있었다.
' 그래, 이렇게 끝판까지 가는 거야. 그럼 나는 비로소 온전해질 거야.'
각 안무자들의 필요와 요구, 그들만의 잣대에 맞아떨어지는 것으로써 내 존재와 실력에 대한 불안과 의심을 해소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정을 더욱 갈구하게 되었다. 그들이 인정해준다면 나는 역량이 있는 것이고, 그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별 볼 일없는 형편없는 무용수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