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통하지 않나요?
평화로운 나날이다.
일들도 어느 정도 몸에 벤, 여유로웠던 저녁 근무였다.
저녁 근무는 나이트 직원들이 따로 있기 때문에 프런트를 따로 볼 필요 없이, 사무일을 본다.
저녁 근무는 초창기엔 없었는데 외국 손님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외국어를 못하는 나이트 상들이나 저녁식사를 대접하는 레스토랑 직원들이 곤란할 때 불려 다니는 역할을 맡고 있다.
조용한 날도 있고,
잔머리가 다 튀어나오도록 이리저리 사건사고 처리하러 돌아다니는 날도 있다.
여유로운 저녁, 컴퓨터 앞에 앉아 외국 손님들 예약과 문의 등의 밀려있던 업무를 처리한다.
그리곤,
'요즘 손님들 리뷰를 못 봤는데 한번 둘러볼까~? 칭찬 들으러 가보자!'
우리 료칸은
모든 부킹사이트에서 총 평점 4.7/5점 혹은 9.7/10 등의 높은 점수를 갖고 있다.
보통 일본 손님들은 전화예약이 많고, 부킹사이트는 외국 손님들이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각국의 다양한 언어로 쓰여있다.
시설/서비스/식사/교통편 등등의 각 부분에서 유난히 뛰어난 것은 서비스 부분이다.
서비스 받는 비싼 료칸이라서 다른 호텔들보다 높은 평점인 이유도 있지만 우리 료칸은 주변 다른 료칸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런 가운데
영문으로 쓰인 한 리뷰... 평점 왜 이래...?
띠로리...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 글을 쓴 한국 손님을 아주 정확히 기억한다.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억울한 날로...
리뷰는 영어로 쓰였다.
그 후기의 요는
한국 직원의
버스예약 실수에 관한 이야기와
본인들이 잘못 하차해서 힘들었던 점
그래서 전화했더니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점
바로 인정도 안 하고 사과도 안 한 점
그리고 조언
나중에 숙박할 때 직원의 실수에 대비해 예약증을 한번 더 체크하라는 것.
기가 찼다. 화가 났다.
수치스러웠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 꺼내어 보여줄 수 있다면...
한 달 전쯤 그날의 체크아웃을 또렷이 기억한다.
커플 손님으로 체크인을 도왔고 다음날 아침에도 온천탕 쪽에서 만나 안부를 여쭈었다.
남성분이 일본어를 조금 아는 것 같았다.
일본어를 아는 한국손님이 오면 일본 스텝들과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도 좀 편하다.
체크아웃 시간
커플 손님이 시내로 나간다고 하길래 전철보다 편한 고속 버스를 예약해 드렸다. 그리고 언덕 아래의 버스 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리는 송영버스를 태워서 보내드렸다.
체크 아웃 손님들은 전철 혹은 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손님을 태우고 운전석에 앉은 회장님께 내려드릴 장소를 말씀드려야 한다.
그날도 똑같이
회장님께 전하고 버스 문을 닫는다.
그리곤
간판 앞에 스텝들과 나란히 서서 " 아리가또 고자이마시따! (감사합니다)" 라고
우렁차게 입 모아 말하며 90도 인사
버스가 언덕 아래까지 달리고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든다.
'조심히 가세요~'
나는 이 순간이 일할 때 가장 뿌듯하며
쓸쓸함도 함께 든다.
잘 쉬고 가시는 손님들을 보며 기분이 좋고
반대로
다들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 남겨진 느낌이 들어
쓸쓸함도 느껴진다.
근데 이러한 마음도 잠시뿐.
재빨리 다시 프런트로 돌아가 다른 손님들의 체크아웃을 돕는다.
체크아웃은 11시까지. 11시가 되면 손님들이 몰리기 때문에 가장 정신없는 때이다.
그런데 무전으로 사무실에서 한국인 전화 호출이다.
'아아아, 이 시간에...'
황급히 뒤로 들어가 전화를 받으니, 좀 전에 버스 예약해서 보내드린 커플 손님이다.
잉? 잘못 내리셨다고요?
30분 소요되는 도심으로 나가는 고속버스로, 내리는 시내의 정류장이 2곳이다.
남자 손님 왈
"고속버스 타고 처음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리길래 의아했는데 방송에서 우리가 내릴 역이 다음 역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안 내렸더니 엉뚱한 곳에 와있어요..."
읭? 다음 역 아닌데... 고속버스 정류장은 두곳인데 대부분 첫번째 정류장에서 다 내린다. 착각해서 잘못 내리셨구나. 싶어서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한층 더 밝은 목소리로 전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멀지 않아요. 아래로 쭈욱 관광지 구경하면서 10~15분 걸어 내려가셔도 되시고요. 택시 타시면 금방이에요."
그렇게 끊고 다시 바쁜 프런트를 돕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전화다.
"제 여자 친구가 굉장히 화가 났어요..."
나 때문에 화가 났더란다. 당황스러워 얼른 이유를 물어보니, 내가 우리 송영버스 운전자(회장님)한테 목적지를 잘못 말해서 본인들이 잘못 내린 거란다.
"아니에요. 저희 마을에서 내리실 곳을 말씀드리지, 손님이 가실 시내 목적지는 말하지 않아요."
남자 손님은, 본인이 일본어를 좀 알아서 똑똑히 잘 들었다고 한다.
맙소사.
화가 난 여자 손님이 바꿔 받는다.
본인이 한국에서 서비스 직종에서 일하는데 손님이 말하면 사과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란다.
헛. 엄청 매서운 목소리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손님께서 그렇게 당황하신 상황인 것도 모른 채, 말씀드렸던 거 같아요."
나는 기분 좋은 여행에서 걱정 덜어드리려고 방법을 알려드렸던 건데 손님은 처음부터 사과를 받으려고 전화했었나 보다.
그래서 재차 전화한 것.
여기서 팩트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손님의 마음이 굉장히 언짢고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른 손님 대처할 생각에, 너무 성급히 대응한 것 같아 진심으로 사과드렸다.
여전히 날카로운 말투의 여자 손님은 다시 남자 손님께 전화기를 돌렸다. 나는 또다시 사과했다.
이 전화를 끊고, 두 가지를 얼른 확인했다.
내가 버스 예약을 잘못했나? 아니다. 버스표에도 첫 번째 목적지로 잘 쓰여있다.
두 번째, 혹시나 회장님께 잘못 전달했나 싶어 여쭤보았다. 물론 회장님은 그런 일 없고 말한 곳에 잘 내려드렸다고 한다.
(시내는 전철이든 버스로든 둘 다 갈 수 있기 때문에
전철역, 일본어로 '에끼' 라고 말하고
버스는 다리 위에서 타기에 '다리 이름’을 부른다.)
억울해서 사무실 2층으로 올라가 료칸의 관리를 맡고 있는 엄마뻘되는 다이나카상한테 토로하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마음이 차분해지니...
가만...
훗...
저엉~~~말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일본어를 하는 손님은 나를 편하게도 하지만
깊이가 없는, 일본어 근자감 손님은
특히나 요주인물! 이다.
내가 회장님께 말한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을 대신해 말하는 다리 이름은
**코우**
손님이 고속버스를 타고 잘못 내린 시내 정류장은
*코우*
일본어를 할 줄 아시는 분이 예약표에 첫 번째 목적지로 잘 쓰여있는데 왜 그걸 읽지 못하고
일본어 리스닝에 대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본인의 귀만 철썩 같이 믿는 건지 모르겠다.
휴...
그날 일이 이렇게 선명한데 이 리뷰는 대체 뭐람...
나는 극도로 억울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평점들이 가득한데 그 사이에 악평...
그것도 나에 대한 것이다.
나는 이 손님께 사실을 꼬옥! 알려주고 싶었다.
버스 예약표는 제대로 된 것을 확인함
그리고 내가 말한 이름은 **코우**
손님이 분명 들었다던 그리고 잘못 내린 곳은 *코우*
글자 수도 다르고 가운데 장음인 한 단어만 같다는 것을.
그렇다면,
본인이 갈 목적지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나. 혹쉬? hoxy?
당시에도 이 생각을 하면서도 여자 친구가 그렇게 화내니 어디 화 풀 상대가 필요한가 싶었다.
그런데 여행 다녀온 후에 남성분이 이렇게까지 리뷰를 썼다는 것은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부킹사이트 회원의 이메일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메일로 팩트를 설명하고 싶어 그날도
그다음 날도 다다음날도 저녁과 새벽에
친구에게 전화해 울기도 하면서
작성해 나갔다.
처음의 분한 감정은 점점 반성 모드가 되었다.
이것도 하나의 서비스 공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3일 후, 거의 완성이 되었을 때 그날도 저녁 근무였다.
2층 사무실에 올라가니 사장님이 아직 앉아계신다!
웬일로 이 시간까지...?
대뜸 나는 이 이야기를 꺼냈다.
부킹사이트에 한국 직원에 대한 안 좋은 리뷰가 달렸어요. 죄송합니다.
사장님은 이미 봤다고 한다.
헉, 내가 늦게 본 것이다... 왜 얘기 안 해주셨냐며 속상해하며... 그리고 폐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거듭 말씀드린다.
사장님은 좋은 리뷰 많으니깐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역시 쿨한 사장님이다.
그런 부분들이 참 감사하다.
하지만 난 쿨하지 못하다.
사장님은 동그란 눈으로 묻는다.
근데 이 손님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냐는 것이다.
"네, 그 날 너무 억울해서 다이나카상한테도 말했었거든요."
"사장님, 제가 그분께 드릴 편지를 썼는데, 이걸 손님께 이메일 보내도 될까요?"
"... 그래? 그럼 여기다가 답글로 달아~"
"사장님! 거기에 답글이 달아져요!!!??" (기쁨, 환희)
헉!
체증이 싹 가시는 느낌이다.
사실 내가 삼일 밤새 그분께 편지를 쓰면서 친구들은 이메일을 보낼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은 팩트를 말해줘도 안 들어줄 사람들이란다.
하지만, 나는 할 말은 해야 하고 진심은 통한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진실을 말씀드리고 사과를 드리고 싶었다.
사과 부분은
내가 버스 예약표를 드릴 때, 목적지를 한 번 더 숙지를 못 시켜드린 점
그리고 유선상으로 손님의 상황과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섣불리 말한 점 등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면, 그 글을 지워주지 않을까... 란 마음에서이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올릴 수 있다면
친구들 말대로 무시한다고 해도
내 글을 다른 예약자들도 볼 수 있다니 (사실 이게 정말 정말 중요하다)
난 너무너무 너무나 기뻤다.
나는 한국어로 작성한 장문의 글을 급히 번역기를 돌려 사장님께 글의 맥락을 보여드리며 설명했다.
사장님은 몇 문장을 빼라고 지시하셨고, 그리고 그 기나긴 내용을 등록해 주셨다.
그 날, 나는 다리를 쭈욱 뻗고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날이 지나도 그 글은 지워지지 않았고 답글도 달리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진심은 안 통할 수도 있는 거구나.
라고
그리고 하나 더 배운다.
사람은 안 변한다.
사람을 가려가며 마음을 써야지.
괜한 마음, 다치지 말자.
이러한 다짐에도 불구하고, 나는 변할 수 있을까...? 하하...
여전히
진심은 통한다.라고 믿고 싶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도 참 많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