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불호 리스트가 알려준 의미
넷플릭스에 별로 볼 게 없다.
최근 그 이유를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됐다.
일본 친구가 좋아하는 K-드라마를 이야기했는데
대부분 내가 보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새로운 추천이 이어질 때마다
나는 비슷한 대답을 반복했다.
“그 여배우를 별로 안 좋아해서.”
질문이 돌아왔다.
“그럼 어떤 배우를 좋아해?”
그런데 이상하게도
좋아하는 배우보다
불호인 배우들이 먼저 떠올랐다.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라자냐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나를 더 알게 될 힌트처럼 느껴졌다.
메모장을 켜고 이름을 적어 내려가다 멈칫했다.
불호의 명단에는
일곱 명의 이름이 빼곡했고,
마음이 가는 배우는
고작 세 명뿐이었다.
7 : 3
반대일 거라고 생각했기에 스스로 조금 놀랐다.
내가 이렇게 불편하게 느끼는 배우들이 많았다고?
공통점이 궁금해졌다.
대부분 예능 프로그램에서 봤던
인상이 강한 배우들이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언행이 조금 가볍다고 느꼈다.
반대로 마음이 가는 배우들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작품에 몰입하지 못했던 이유는
극의 역할보다
‘그 사람’이 먼저 보였기 때문이다.
캐릭터 위에 형성된 이미지가 겹쳐졌다.
그래서 넷플릭스에서 작품을 고를 때
선택지가 없었던 게 아니라
불호가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이 감각은 과거에 옷을 고를 때와도 닮아 있었다.
옷장에 옷은 많았지만
정작 입을 옷은 없었던 시절.
하지만 정리를 하며
비우는 물건과 작별하는 법을
터득하고부터는 달라졌다.
고마웠어. 잘 가.
너 덕분에 알게 됐어.
“나풀거리는 소매는 밥 먹을 때
불편하다는 걸 알려줘서 고마워.”
“이 색상은 내 피부톤을
어둡게 만든다는 걸 가르쳐줘서 고마워.”
물건을 정리하며 알게 된 사실 하나.
나를 아는 일은
설레는 것을 모으는 과정인 동시에,
나와 맞지 않는 것을
구분해 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옷이 없어.
볼 게 없어.
친구가 없어.
기회가 없어.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제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세상에는 선택지가 많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부족함이 아니라,
설레지 않는 감각과
설레는 감각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던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7:3 비율 이후에 찾아온 변화는 의외였다.
선택지가 줄어든 느낌이 아니라,
좋아하는 카테고리가 명확해지고
설렘의 농도가 더 진해진 느낌.
앞으로는
내 불호의 여배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작품성이 있는 드라마와 영화를 대할 때
편견 하나쯤은 내려놓는 태도를 가져야겠다.
취향을 지키는 일과
가능성을 닫지 않는 일 사이에서,
나는 조금 더
유연한 관객이 되고 싶다.
그리고
싫어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취향이 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