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그릇은 크지 않다

설렘의 총량

by 지혜




나이 들수록 뇌의 용량은 더 키우고 싶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집의 크기와 마음의 크기에 대한 욕심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크다는 것은 좋은 것이고

넓다는 것은 여유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정리 코칭을 하면서

신기한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분명 넘치는 옷가지들과

바닥까지 쌓여 있던 책들이 있었는데,

설레는 것만 남기고 나면

옷장과 책장의 크기는 그대로인데도

가구용량에 맞춰 옷과 책들이

딱 적정량만 남아 있다.



그 순간,

가구의 모양이 보이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물건의 ‘총량’에 설레기 시작한다.



문제는 공간의 크기가 아니었다.



내게 맞는 물건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나는 많은 것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많은 물건,

많은 일정,

많은 관계.



나는 에너지 총량이

크지 않은 사람이었다.



예전 같으면

내가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작은 것은 결핍이 아니라

선별의 조건이라는 것을 이제 안다.



넘치고 버거워지고

숨이 막히기 시작할 때,

점점 감각이 둔해진다.



무엇이 설레는지

잘 느껴지지 않게 된다.




예전에 커다란 캐리어 2개와 배낭을 짊어지고

이리저리 여행을 다녔던 적이 있다.


공항에서 짐을 부칠 때마다 오버차지를 냈고,

체크인 카운터 옆 쓰레기통은

언제나 나의 마지막 정리 장소였다.


마지막 호주의 작은 섬에서 만난 사람에게

어울릴만한 옷들을 건네면서

스스로 조금 황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삼 개월 간,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물건들에

끌려다니고 있었다.




물건도 그랬지만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많은 관계 속에서 에너지가 흩어지고,

많은 선택지 속에서 감각은 무뎌졌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몇 사람의 존재가 고맙고,

계절마다 다시 만나는 옷들이 반갑고,

탁자 위 작은 추억 오브제들이

나를 충만하게 한다.



내 그릇의 크기를 인정한다.



그래서 더 신중하게 정말 설레는 것만 담는다.



“어느 정도 크기가 커지면 만족할까?”



크기가 아닌 감각의 문제라는 것을 안 지금은

조금 다른 질문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설레는 것을 고른다는 건

줄이는 일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맞추는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것을 붙잡고 버티는 삶이 아니라,

매일 설렘이란 감각을 느끼며 살고 싶다.



설렘을 의식하며

다시 선택하는 삶.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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