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모든 게 커 보였다
어렸을 적 높은 신발장과 높은 옷장의 번호 키를 받을 때면 걱정이 앞섰다.
까치발 간신히 들어 올려야 닿을까 말까 하는 걱정.
하지만 아빠는 내 걱정을 더 앞서가서
본인의 낮은 칸 번호 키를 내 손에 건네주었다.
사우나는 꿈도 못 꿨다. 아빠가 사우나를 들어갈 때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사우나 문을 열 때마다 잠깐 흘러나오는 그 뜨거운 열기를 참지 못하고 이내 온탕으로 들어가기 바빴다.
사우나에서 나온 아빠가 냉탕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가 보겠다고 발 담갔다가 차가워서 몸서리치고 또다시 온탕으로 대피했다.
아빠는 항상 아프지도 않게 때를 밀어주셨다.
초록색 아니면 노란색의 오돌토돌하고 센 때밀이가 아닌 조금은 부드러운 바디타월로 밀어주셨는데 얼마나 시원했는지 모른다.
아빠의 바통을 이어받아 내가 아빠의 등을 밀 때면
항상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어야 했다.
아빠의 등은 정말 커다랬다. 작은 손으로 때밀이를 잡고 이 큰 등을 언제 다 미나 하면서도 열심히 힘을 쥐어짜냈다. 아빠 등을 밀면서 세신 하시는 아저씨를 볼 때마다 감탄하면서 놀라기도 했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서 머리 말리는 곳에 배치된 로션과 토너를 거침없이 바르는 아빠를 매번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는 목욕을 마치면 항상 제티를 찾았다.
바나나우유보다 제티를 많이 찾았었다.
목욕 끝내고 마셨던 제티는 지금 마시는 아아보다
더 끝내주게 맛있었다.
그 시절 약수동 목욕탕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