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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Jan 05. 2025

추모하다

슬픔에 슬픔을 덧대어 오늘을 버티는 길

그토록 아파하고도
마음이 서성이는 건
슬픔도 지나고 나면
봄볕 꽃망울 같은
추억이 되기에
서글퍼도 그대가 있어
눈부신 시간을 살았지
오래전 내 그리움에게
가만히 안부를 묻는다(중략)
다시 내게 불어온 바람
잘 지낸다는 대답이려나
흐느끼는 내 어깨 위에
한참을 머물다 간다

 -이문세 <슬픔도 지나고 나면> 중


아이와 함께 지역 내에 설치된 합동분향소를 찾아갔다. 장례식장도 갈 때마다 어색한데, 합동분향소는 처음이라 더 어수룩했다. 분향소 운영 마지막 날이기도 했고, 주말 오전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제단 위에는 누군가가 두고 간 작은 소방차 장난감이 놓여 있었다. 소복이 쌓여 있던 국화꽃 하나를 들고 제단 앞에 서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다른 이의 상처 위에 물색없이 내 아픔 포개어 놓은 채로, 가는 길이 너무 무섭지 않기를 바라 향 하나를 보태었다.

익숙한 향내가 공간을 가득 메다.


그 어느 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내 남편의 영정 앞에 국화꽃을 두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을 것이고 그는 어쩌면 스스로의 상처 위에 꽃을 놓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는 눈물을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이고 나오는 길에 아이가 내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엄마, 아빠한테 가고 싶어요


아직 아무것도 모를 네 살 아이에게 향소에 가는 것은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과 그 남은 가족들이 너무 슬프지 않도록 위로하고 인사하러 가는 일이고 우리가 아빠한테 인사하러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해 주었더 안간 아빠한테 가고 싶어진 모양이다. 유골함에 눈도 없고 코도 없는데 그게 왜 아빠냐고 묻던 아이에게 그 봉안당이 무슨 의미인진 알 수 없으나 이후 특별한 계획도 없었고 허물어지는 내 마음도 추스를 겸 그 길로 오랜만에 남편에게 다녀왔다.


아빠한테 가는 길이 맞냐며 왜 이렇게 머냐고 징징대더니 봉안당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주변 잔디 위를 망아지처럼 해맑게 뛰어다닌다.


와중에 아빠에게 다녀오는 길이 아이에게 봄날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에게 다녀가는 내 모습이 아이에게 우울해 보이거나 비참해 보이지 않았던가 보다. 그것도, 다행이다.


나는 눈도 없고 코도 없는 그 사람을 눈로 몇 번이고 어루만졌다.

지내냐 내 허허로운 질문에 그는 무엇으로 답하고 있을까. 가 그 미세한 대답들을 가끔은 눈치챌 수 있기를.


문득 내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누구에게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만 네 살에게 자랑했다.


-민아, 아빠는 엄마를 진짜 진짜 많이 좋아했어.


그러자 만 네 살이 무심한 듯 성실하게 대답한다.


-엄마가 이렇게 예쁘니까 그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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