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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Dec 15. 2024

저는 아빠가 없는데요

아빠는 하늘나라에 있어요

남편 사후, 나는 손수 남편이 세상에 살았던 기록들을 정리해 나갔다. 세상에 누군가가 명백히 존재했던 흔적들은 짙고 무거웠다. 한동안 낯선 사람들에게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해야만 했다.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 말이 내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게 현실이 될까 봐 무서웠고, 파도처럼 몰아치는 현실 앞에서 나는 너무 미력했다.


보험 회사에 전화를 걸어 남편의 사망을 알리자, 보험사 직원이 아이 유무와 아이의 나이를 물어왔다. 아이가 삼십일 됐다는 말이 목울대 언저리에 힘겹게 맺혔다가 흐느낌과 뒤섞여 흘러나왔다. 타인의 사망과 사고 소식을 매일같이 접했을 그 직원은 부지불식간에 울먹이며 말을 잇다가 다급히 죄송하다고 말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런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 됐다.


'남편이 죽었'는 말은 어떻게 표현해도 무안쩍고 절망스럽게 들렸다.

그 와중에도 사람이 어떻게든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참으로 잔인하고 다행한 었다.  


내 상황이 특수했으므로 직장에서는 대부분 내가 사별한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내 입으로 내 사정 이야기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가끔은 모르는 직원들이 나를 향해 다 알고 있다는 듯 안쓰러워하는 표정을 짓고는 안부를 물어왔다. 그게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침묵으로 내가 생의 의지를 다져가는 것을 응원해 주었다. 남편을 잃고 어린애를 혼자 키우며 사는 젊은 여자를 의연하고 따뜻하게 지켜봐 준 시선들에 감사했다. 덕분에 나는 남편을 잃고 난 뒤 어린애를 혼자 키우며 사는 젊은 여자도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몸 밖의 모든 낯선 것들이 때때로 풍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민 듯이 얇고 넓게 펼쳐진 햇살이 따사로웠다.


물론 언제까지나 모든 세상이 내게 온정적이진 않을 거란 걸 알고 있기에 마음 한편으론 늘 걱정이 도사렸다.


아이가 걱정됐다.


얼마 전에는 마트 시식코너에서 치킨을 사는 중에 매원 아주머니가 아이에게 말 걸었다.


-매운 치킨은 아빠 거고, 안 매운 건 네 거야~

 

이제 만 네 살의 내 작은 아이는 동그란 눈으로 말끄러미 아주머니를 올려다보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빠 없는데요.

-응?

-아빠 없어요.

-어.. 그럼 딴 사람이 먹으면 되지.

아주머니는 얼버무리며 돌아섰다.


매운 치킨은 남편 맥주 안주에 딱일 거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그냥 대답 없이 웃었더랬다.

내가 굳이 남편이 없다고  집어 알려주지 않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매번 매 순간 내 상황과 감정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어른들은 그럴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아이와 함께 미용실에 갔다. 내가 머리를 하는 동안 기다리는 아이가 귀여워 보였는지 미용실 직원분이 아이에게 를 걸어 주었다. 아이가 뭐라고 한참을 종알댔다. 나는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미용실 직원이 놀란 듯 내게 묻는다.


-아빠가 하늘나라에 있어요? 아이가 그러던데요.

-아.. 네. 쟤가 별말을 다하네.

나는 멋쩍게 웃고 만다.

속으론 오만가지 생각 한다.


나는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이다. 나는 아이가 요람에서 배냇웃음을 지을 때부터 아비 없이 자랄 내 자식이 세상을 살아가다 받을 상처에 대해 고민했다. 아직은 너무 어려 아이의 친구들이 남의 집 가정사에 관심이 없지만, 언젠가에 누군가가 악의 없는 호기심으로라도 아이의 결핍을 헤집을 거라 생각하면 벌써 마음이 아릿하다.


들에게 아빠의 부재를 일일이 려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에게 가르쳐주어야 하는 걸까.


한참을 고민하다 이내 그만둔다.

내 아이는 내가 설명하면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는 하겠지만 한편으론 그렇게까지 해서 이해시키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남편이 없고 아빠가 없는 건 말하기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그것으로 인해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것은 내 짐작일 뿐이다.


아마 아이는 상처받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계속해서 작게 상처받았으면 좋겠다. 작은 상처들이 굳어 이 아이를 단단하게 해 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뒤에 언제나 내가 있어 그 상처를 보살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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