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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Dec 01. 2024

스무 살 여름날

그 청년의 뻔한 수작에 넘어간 것도 운명이었다면

스무 살의 여름이었다.

방학을 맞아 대학 친구들이 모두 고향으로 갔고, 나는 조금 지루한 참이었다.

그럴 때 전화가 왔다.


"어디야?"

"집이지."

"그래? 그럼 지금 나올 수 있어?"


방학을 맞아 타 지역인 본가로 돌아갔던 동아리 친구였다. 심심했던 차라 반갑게 느껴졌다. 아마 그와 고향이 같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왔을 거라고 생각하고 밖으로 나가자 그가 낡아빠진 옆에 혼자 서 있었다.

나는 의아했다. 우린 단둘이 놀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딴 애들은?"

"나 혼자 . 이번에 운전면허 딴 김에 연습할 겸 해서 엄마 차로 와 봤. 안 멀던데? 고속도로 타니까 금방이더라. 근데 너 ㅇㅇㅇ이라는 식당이 어딘지 알아?"

"아니 처음 들어보는데."

"거기 한번 가보고 싶었는 길 알려주면 내가 밥 살게."


나는 이 지역이 고향이긴 했지만 길치였다. 내 구역밖엔 몰랐다. 그래도 심심한 나에게 밥까지 사주고 드라이브까지 시켜준다니 힘껏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큰 지역이 아니어서 뚫린 길도 몇 개 없었다. 내가 길치만 아니었으면 좀 더 빨리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도착한 식당은 외진 곳에 있는 경양식 레스토랑이었다. 하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투명한 강화유리 바닥 아래로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팔뚝만 한 작은 상어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가족 외식이라 봐야 중국집 정도였고 친구들과 가는 곳도 거기서 거기였다.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자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첫 장을 펼치니 A코스, B코스가 있었는데 이렇게 뜬금없이 얻어먹기엔 부담스러운 금액대였다. 나는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만원 미만의 어린이돈가스 메뉴를 찾아냈다. 그는 내가 고민하는 걸 보 A코스보다 비싼 B코스를 시켰다. 손바닥만 한 랍스터가 포함된 인당 이만 오천 원짜리 메뉴였다.


 그 사람은 하루를 머물고 다음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린 둘째 날에 오리배를 타기로 했다. 살면서 오리배를 타본  그때가 처음이었다.

오리배를 탄 뒤에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식당에서 나오는데 비가 몇 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미리 준비한 우산을 펼쳤다. 그도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왜인지 펼치지 않고 몇 걸음 뒤에서 나를 쫓다가, 연스럽게 우산 속으로 들어왔다.(강동원인가...)


그는 2박 3일을 머물다 갔다. 하루는 동아리방에서 자고, 하루는 PC방에서 밤을 새웠다. 나는 당연히 가족들이 있는 우리 집에서 잤다. 어쨌거나 우린 그때까지도 분명히 친구 관계였다. 오리배에다가, 롤러스케이트도 같이 타고 아마 영화까지도 같이 봤던 것 같은데 나는 전혀 그런 일들을 미심쩍게 생각하지 않다.

마지막 날 우린 비를 피해 강가의 다리 밑에 들어가 이마트에서 사 온 포도 한 송이를 까먹었다. 그는 뭔가 아쉬운 듯 말했다.

 "뭔가를 어디에 놓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리고 다음 날 그는 고향 본가로 돌아갔다.


한동안 그는 집안일을 돕기 위해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에서 지냈다. 매일 같은 시간, 하루 일과를 마친 그 사람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우린 한 시간 정도 수다를 떨었다. 나는 방학이 끝나기까지 한 달 동안 어린 왕자의 사막여우처럼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윽고 방학이 끝났고, 우린 스며들듯이 연인이 되었다.


나는 정말 그 사람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숨차게 리어카를 끌고 가 할머니가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너실 수 있게 뒤에서 밀어주는 그의 교과서 같은 선량함이 좋았고, 어린아이 같은 미소나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좋았고, 크고 손가락 마디가 굵은 손과 네모반듯한 손톱, 단정한 햇빛 냄새 같은 것들이 좋았다. 늘 내가 원하는 건 다 좋다면서도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결정을 할 줄 아는 결단력이라든가, 별로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면서 많은 걸 경험해보고 싶어 굳이 동아리 회장 자리를 떠맡은 것까지도 멋져 보였다. 말이 잘 통하고 남의 말을 함부로 떠들지 않았으며 수다스럽지 않았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강하게 밀고 나가는 고집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배려심이 깊었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 줄도 알았다.


일을 맡으면 성실하게 열심히 했다. 가끔 데이트비용이나 용돈벌이를 위해 새벽부터 노가다를 나는데 꼭 흙과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돌아왔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라서 일하는 요령이 없었을 텐데도 무작정 열심히 하니 인력회사를 거치지 않고도 러브콜이 오곤 했다.


착하고 성실하고 입이 무거운 사람이었다. 큰일이 생겨도 쉽게 놀라는 법이 없었다. 조용하면서도 소심하지 않았으며, 쉽게 주눅 들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이 산 같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그 본질의 단단함만큼은 변치 않는 산 같았다. 누구라도 예뻐할 만했다. 정말 어디서든 예쁨을 받았다.


 나는 참을성 없고 다혈질인 성미인데도 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 나도 정말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우린 거의 안 싸웠지만 한 번씩 의견이 맞지 않더라도 그 사람은 절대 큰소리를 내며 화내지 않았다. 나는 그 차가운 분노가 좋았다. 우리 집 식구들은 다 불같은 성미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그를 통해 삶의 온도를 맞추는 법을 배웠다. 그 사람이 내 사람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러웠다. 그 사람은 내가 미처 생각지 않고 있던 내 장점들을 알아봐 주었고 한결같이 예뻐해 주었다.


어느 날은 그 사람이 손바닥만 한 딸기케이크를 사 왔다. 내가 지나가다가 무심코 쳐다본 케이크였다. 특별히 먹고 싶다고 생각해서 쳐다본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무의식 중에 했던 행동을 눈여겨보고 나를 생각해 준 마음이 사랑스러웠다.

그런 사람이었다.

먼저 출근하던 길에 비가 오는 걸 보고는, 내가 우산 없이 나갔다가 비를 맞을까 봐 다시 집으로 올라와 내 부츠에 우산을 꽂아주고 나가는 사람.


오늘 새벽 나는 오랜만에 그 사람 꿈을 꿨다.

꿈에서 그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심술 맞은 노인네가 된 그 사람한테 마음이 상한 내가 스무 살의 다정했던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꿈이었다. 아무것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나의 어리석음을 탓하다 알람 소리도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막상 꿈에서 깨자 그 사람이 성질 나쁜 할아버지가 되어 꿈에 나타난 것보다, 현실에선 영원히 그의 나이 든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났다.


너는 꿈에서 꼭 나한테 못되게 굴더라.

어쩌면 평생 당신을 이고 지고 갈 내 마음을 배려해서 나를 떼어내려고 그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죽어서도 다정하다.

눈물이 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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