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리다 Nov 24. 2024

고집 센 시어머니와 못된 며느리(2)

어머니가 밉고 싫고, 불쌍했다.

처음에 남편은 어머니보단 나를 설득하는 편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머니가 배려심 많고 베풀기 좋아하는 사람인데 다만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이라 그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부탁. 어머니가 천성이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지만 나는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이 불편했다. 남편이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은 득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괴로워안된다 생각했다. 어머니의 지난했던 삶은 내가 감당할 몫이 아니었다. 남편과 싸울 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미워졌다.


느 날 시어머니가 미리 말도 없이, 이불까지 사들고 신혼집에 이닥쳐 일주일 가량을 머무셨다. 애들 불편하지 않겠냐는 누군가의 걱정 어린 말에 들 집인데 뭐 어떠냐다. 만일 어머니가 미리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셨다면, 내게 좀 더 다정하게 대하며 미안해하기라도 했다면 나도 그리 박하게 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일주일간 회사를 마치고도 집에 들어가질 못했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없 사이에, 아들 며느리한테 제대로 대접을 못 받았다고 푸념하 내 살림살이를 멋대로 하시는 시어머니를 향해 남편은 결국 한바탕 큰 소리를 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자 남편은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어머니의 삶이 아니라 아내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았다.

남편 느리지만 조금씩 내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착하고 남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이 나와 어머니 사이에서 '우리'의 가정에 중심을 잡아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했다. 그 사람이 확고하게 내편을 들기 시작하면서 어머니와 부딪칠 일 적어졌다. 도 그의 노력에 부응해 최대한 무던하려 애썼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갖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죽었다.


어머닌 내 남편 장례를 치른 지 삼일째 되던 날 나를 따로 불러냈다. 너는 재혼할지도 몰라 믿을 수 없으니 남편의 사망으로 나오는 보상금을 당신에게 나누라 했다. 아이의 몫을 챙겨놓겠다 하셨다. 어머니가 애 기저귀 값이라도 주려고 부르신 줄 알고 거절할 생각으로 쫓아 나왔다가 불시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나는 차가워진 손가락 끝을 감아쥐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어머니 제가 재혼하면 애를 버려요? 애 몫은 제가 알아서 챙길게요. 

입 밖으로 난 내 목소리가 낯설었다.

이제 세상에 남편이 없어진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나는 어머니 온전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


오십일도 채 안된 아기키우며 살아갈 일만 생각하고 싶었는, 장성한 자식을 하루아침에 잃은 어머니가 불쌍했다. 그래서 결국 시어머니한테 돈을 나눴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과 공동명의였던 실거주용 부동산 상속 문제로 시어머니에게 아이의 특별대리인*을 부탁할 일이 생겼다.(*상속재산에 대해 나와 아이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므로 미성년자 아이의 특별대리인을 선임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주로 사별한 배우자의 가족을 선임하게 된다) 그런데 어머니는 말도 안 된다며 거절했다. 아이가 아직 너무 어렸고 실거주용 집이었기 때문에 단독상속으로 진행하려고 결정한 사안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된 일이 있어서 법무사에선 이제 와 공동상속으로 진행하기가 복잡하다고 했다. 처리기한도 정해져 있었다. 나는 또 한 번 무너졌다. 그래, 어머닌 그 와중에도 내가 재혼해서 애를 버리고 재산을 빼돌릴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입장까지 헤아릴 여유는 없었다. 비참했다. 세상이 버거워 우주의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만 싶었다. 나를 두고 떠난 남편을 원망하다가도, 사실은 살고 싶었을 그 사람을 원망한 게 미안해서 오열했다.


그때 나 혼자 마음속으로 어머니와 연을 끊었다. 하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어머닌 여전히 내게 연락하고, 주기적으로 뭔가를 보낸다. 받는 사람을 위해서라기보단 본인의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서 그런. 나를 그렇게 비참하게 만드시고 그저 손주와의 연결고리 잃지 않으려는 그 이기적인 절박함 앞에 나는 침묵했다.  


오랜만에 아이를 보여드린 자리에서도 어머니는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보자마자 강제로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아이가 낯설어하며 불편한 듯이 몸을 꿈지럭대는데도 아랑곳 않는다. 아이가 매워서 못 먹겠다는 반찬을 자꾸만 아이의 그릇에 놓는다. 참다못한 아이가 그 엉성한 어휘력과 발음으로 '매워서 못 먹는다니까요?'하고 똑 부러지게 말해보지만 시어머니는 들은 건지 만 건지 또다시 그 반찬을 아이의 그릇에 올려놓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남의 말이나 감정은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 어머니가 말하는 방식과 태도에 불쾌함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자식 잃은 어미에게 한없이 질어지는 나 자신에게 역한 마음이 든다.


한창 상담을 받을 때 심리상담 선생님에게 시어머니에 대한 내 복잡한 감정을 털어놓자, 선생님은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물어봐 주었다.


어머니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만나고 싶지 않다. 말도 섞기 싫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가 불쌍하다. 내 자식이 예쁠 때마다 어머니가 불쌍해서 죄책감이 든다.


어머니가 밉고 싫고, 불쌍하다.


우린 정말 사랑했던 한 사람을 잃었지만 각자가 느끼는 불행의 결이 달라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이미 어머니와의 교차점에서부터 한참을 멀어졌고 아마 다시는 교차하지 않을 것이다.


백만 방울의 빗방울이 땅에 닿는 속도는 모두 다르다. 어떤 빗방울은 내가 비를 맞기도 전에 바닥의 풀에 먼저 닿는다. 삶의 방향이 상승이 아니라 하강이라면, 우리는 모두 같은 곳을 향해 다른 속도로 떨어지는 중이다. 미움도 증오도 연민도, 영원한 사랑조차도 각기 다른 높낮이와 농도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언젠가 모든 게 바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을 것이다.



이전 11화 고집 센 시어머니와 못된 며느리(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